"나 같은 건 이미 잊어버린 줄 알았어. 마지막으로 당신을 만나서 반가웠어, 제프. 나를 만나기 위해 위험한 곳까지 찾아와 줘서 고마워....... 어서 빨리 마을로 돌아가세요. 그곳에는 마물이 많으니 오래 머물러서는 안 돼."
"그런 말 하지 마!"
제프리의 비통한 외침에,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당신 사이에는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생겼어. 그리고 왕도에는 당신의 귀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 않아?
부디 나 대신에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줘. 나로서는 더 이상 당신 곁에 있을 수 없으니까."
라일라의 말에, 제프리의 표정에 미묘한 동요가 나타난다.
"그것은......"
"왕도에서 마물 토벌군을 지휘하는 장군님도, 그분의 아가씨도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 거잖아? 그녀와 당신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마을에까지 쫙 퍼졌어....... 그 후, 당신의 행방불명을 알리는 편지를 받은 것도 그녀한테서였고. 후후, 그녀는 나를 당신의 친척 같은 존재로 여겼던 것 같아. 내가 너의 가족 같은 존재라는 말을 들었다고 편지에 적혀있었으니까."
마을에서도 뛰어난 검술을 자랑하던 제프리는 왕국 기사단에 들어가겠다며 5년 전 마을을 떠났다. 라일라와 제프리가 자랐던 가난한 마을을 떠나려면 그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지위나 재산이 없어도 능력주의의 기사단에는 검만 잘 다루면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가진 것 없는 자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었다.
라일라에게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제프리는 연인인 동시에 절친이었으며, 가족을 뛰어넘을 정도로 가까운 존재였다. 제프리가 마침내 왕도로 향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는 라일라에게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마을을 떠났다.
그의 뛰어난 검술 실력은 왕도에서도 금세 눈에 띄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프리가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모인 변방으로 향하는 마물 토벌대에 지위를 얻어 합류했다는 소문이 라일라의 마을에까지 퍼졌다. 군대의 총지휘를 맡은 장군도 눈독을 들이고, 그 딸까지 그에게 집착하는 것 같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 원정을 떠난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라일라에 대한 제프리의 소식은 끊겼다.
장군의 딸이 제프리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도 라일라의 마음은 불안에 떨었지만, 제프리의 소식이 끊겼다는 그녀의 편지를 받고 나서부터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안부만 바랄 뿐이었다.
이후에도 새로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고, 희망이 희미해지면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라일라는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샘으로 향하던 중 마물의 습격을 받았다.
그리고 라일라는 지금 현세와 저승의 경계에 서 있다.
천천히 일어나 제프리에게 등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나려는 라일라에게, 샘물 수면 너머에서 비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만! 네가 말하는 것은 장군의 딸 엘레오노라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건 오해야. 그녀는 아버지인 장군의 부하인 나의 검술을 눈여겨본 것뿐이라고 생각했었어. 나도 너를 빨리 데리러 갈 수 있는 지위를 얻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건 나도 어리석었어. ...... 그래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건 너뿐이야. 물론 결혼 얘기는 거절했어. 좀처럼 납득하지 않았지만 ......."
제프리는 필사적으로 라일라를 불렀다.
"네가 없는 이 세상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 모든 빛이 사라진 것처럼 색깔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내가 잘못했어. 조금이라도 너를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고, 내 능력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저 네 곁에서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너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가난해도 상관없었어. 설마 내가 없는 동안 너를 잃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단 말이야....... 제발,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겠어?"
라일라는 한숨을 쉬며 제프리의 말에 눈동자를 적신 후, 천천히 다시 수면으로 돌아서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정말 행복해....... 저승에서 당신의 행복도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도할게."
"라일라!"
(제프리, 빨리 돌아가.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당신의 실력이 아무리 높다 해도 당신도 나처럼 마물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제프리에게 등을 돌린 라일라의 눈에서 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본 검은 머리의 남자가, 라일라를 대신해 샘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금빛 눈동자에 제프리의 푸른 눈동자가 보인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프리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제프리구나. 그녀를 돌려받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