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전편(1)
    2024년 01월 20일 00시 30분 3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 넌 아직 많이 어리구나. 분명 이곳에 오는 것을 원치 않았겠지?]



    큰 지팡이를 짚고 흰 장옷을 입은, 놀라울 정도로 단정한 얼굴의 남자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연민의 색을 띠고 라이라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뇨, 딱히 미련은 없어요."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라일라의 말에, 남자는 눈을 깜빡였다.



    [드물군. 보통 너처럼 예쁜 소녀가 여기 오면, 세상을 떠올리며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기 마련인데]



    입가에 포기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말없이 고개를 젓고서, 라일라는 고개를 들어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가 황천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인가요?"



    라일라 앞에 서 있는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고 윤기 있는 긴 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래, 맞아. 너는 네 자신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구나]

    "네, 아시다시피 그래요. 그럼, 빨리 저를 저쪽으로 보내주세요."



    라일라의 앞에는 가늘고 긴, 희미한 동굴 같은 길이 이어져 있다. 그 안쪽에서 나오는 노란빛을 띤 따뜻한 빛은 희미하게 동굴 입구까지 닿아 있다.



    동굴 입구에 있는 이 검은 머리의 남자는, 아마도 황천의 나라의 문지기로 불리는 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라일라의 마을에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속 존재다. 하지만 신이어야 할 그가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다니, 라일라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스스로 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라일라를 격려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는, 손을 들어 그녀를 가로막고 멈춰 세우며 입을 열었다.



    [너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저 샘물 건너편에 나타났어. 마지막으로 그와 이야기할래? 이 동굴을 지나 황천의 나라에 도착하면 너는 다시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어. 그와의 대화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 하기에 달렸어]



    라이라 마을에서 가까운 산속에는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는 샘이 있다는 이야기도 마을에 전해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구전이었고, 그 샘이 있다고 하는 곳도 험준한 산속 깊은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샘은 실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라이라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 아이러니한 일이네)



    라일라가 목숨을 잃은 것은,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샘으로 향하던 중 마물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라일라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이 속설의 진위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흑발의 남자의 말에 당황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저에게요? 그라고 하셨는데, 남자인가요? 대체 누가 저 같은 사람을 ......?"



    검은 머리의 남자는 동굴 옆에 있는 작은 샘을 가리키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겨 샘가로 걸어갔다. 부드러운 손이라고 라일라는 생각했다.



    라일라는 그 깊고 푸른색으로 맑은 샘의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고, 안쪽을 들여다보고는 숨을 삼켰다.

    한때는 꿈에서까지 보았던 그리운 얼굴, 그리고 라일라가 마지막 순간에 무심코 도움을 청했던 그 이름의 주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샘물 속에 비치고 있었다.



    (제프 ......)



    샘가에서 얼어붙은 라일라의 모습을, 물속에 비친 그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는 필사적인 모습으로 열심히 라일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고, 그의 손은 허망하게 차가운 샘물을 끊을 뿐이었다.



    "어째서 ......?"



    라이라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린 듯, 수면 너머에서 라이라에게 응답하듯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일라, 거기 있구나? 내 목소리가 들려?"



    라일라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한때 연인이었던 제프리의 얼굴이 샘물 건너편에서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곧고 강한 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에 느슨한 웨이브를 그리는 옅은 금발이, 흙먼지로 뒤덮인 그의 얼굴에 땀을 흘리며 달라붙어 있었다.



    라일라는 울컥하는 것을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제프, 당신, 살아있었구나."

    "그래. 라일라, 거기 있다는 것은 너 정말로 ......"

    "그래, 맞아. 나는 더 이상 당신이 있는 세상에 있지 않아."



    라이라는 작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마물 토벌을 위해 오지로 간 당신은 오랫동안 왕도로 돌아오지 않았고, 행방불명되어 아마도 목숨을 잃었을 거라는 편지를 받았어. 당신이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 보는 대로, 나는 살아있어....... 그래도 내가 있던 부대가 상당히 곤경에 처한 것은 사실이야. 전멸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지. 드디어 왕도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네가 갔다는 이 산으로 서둘러 달려왔지."



    라일라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제프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728x90

    '연애(판타지) > 마지막으로 하나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편  (0) 2024.01.20
    전편(2)  (0) 2024.01.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