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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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19일 23시 16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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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사랑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달콤한 감각을 최대한 오래 맛보고 싶다.

     아름답고 덧없는 꿈같은 사랑이었다.



     리라의 주변에 있는 정령들도 함께 붕 뜬 것을 느낀다.

     정령들은 성녀의 감정에 호응한다.



     릴라가 기뻐하면 정령들도 기뻐한다.

     릴라가 슬퍼하면 정령들도 슬퍼한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정령은 릴라의 감정을 알고 있다.



     ㅡㅡ그때.

     숲 속에 어울리지 않는 금속 소리가 들리자, 릴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나무의 초록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다.

     갑옷이다.

     갑옷을 입은 일행이 릴라에게 다가온다.

     그 선두에 있던 것은 시메온 왕자였다.



    "시메온 왕자님, 오랜만이네요."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릴라는 고개를 숙였다.



    "기뻐하라. 너를 데리러 왔다."



     불쾌한 목소리가 릴라의 가슴을 파고든다.

     왕자는 적을 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말문이 막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릴라의 앞에서 왕자는 말을 이어간다.



    "릴라, 네가 나가고 나서 정령들이 마법에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큰일이다.

     이 나라의 생활 시스템은 마법에 의존하고 있다. 물을 끌어올리는 것도, 풍차를 돌리는 바람도 마법이다.



     마법은 정령에게 소원을 빌면 발동한다.

     정령이 응답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



    "...... 성녀님들은 뭐래요? 알메리 씨도 있잖아요?"

    "무슨 뻔뻔한 소리를. 네가 무슨 짓을 했겠지. 다들 정령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더군."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 숲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의심스러우면 감시자 분께ㅡㅡ"

    "감시자? 무슨 소리지?"

    "네?"



     릴라는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렇다면 비르셀은 대체 누구인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원한다면 성녀로 되돌려 주마. 내 밑에서 평생 나라를 위해 일해라. 자, 어서 와라!"



     난폭하게 팔을 잡아당긴다.



    "ㅡㅡ싫어!"



     온몸에 거부감이 몰려와서, 릴라는 시메온 왕자를 밀쳐내었다.

     바구니가 땅에 떨어지자, 나무딸기가 땅에 마구 흩뿌려진다.



    "너ㅡㅡ!"



     격분한 시메온 왕자가 검을 뽑으려 했다.

     나무딸기를 짓밟고서.



     무참히 짓밟힌 나무딸기의 모습이 자신과 겹친다.



    (빌ㅡㅡ!)



     비르셀이 어떤 사람이어도.

     설령 환상이었다 하더라도.

     릴라는 그를 사랑했다.



     이대로 이곳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물덩어리가 왕자 일행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릴라의 주변만을 제외하고서.



    "무...... 무슨......"



     흠뻑 젖은 왕자가 벌벌 떨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릴라."

    "빌!"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가장 보고 싶었던 모습이.



     어느새 비르셀이 릴라와 왕자 사이에 서 있었다.



    "네 마법이냐 ...... 누구야 너는?"

    "조금은 머리가 식었나? 나는 정령왕의 아이, 비르셀이다."



     ㅡㅡ정령왕의 아이.

     그 이름을 듣고, 릴라는 진심으로 놀라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정령의 왕자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었냐면서.

     엄청나게 무례한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의 사랑하는 릴라."



     비르셀은 왕자에게 등을 돌리고 릴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계속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슬픔에 함께하고 싶었고, 행복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릴라, 저와 함께 정령계로 오세요. 반드시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빌......"



     내민 손을, 릴라는 아무 생각 없이 잡으려 했다.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신을 원하는데 거절할 리가 없었다.



    "ㅡㅡ백성을 버릴 셈이냐!"



     왕자의 말이, 릴라의 성녀로서의 양심을 찔렀다.



    "먼저 내쫓은 것은 그쪽이었을 터. 무엇보다도 지켜야 할 소중한 성녀를 여자에게 속아 추방하고, 더 나아가 격정에 휩싸여 상처를 주려고 하다니."

    "큭...... 그건 ......"

    "오늘내일 멸망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 스스로 어떻게든 해봐라."



     내쫓는 말과 함께 바람이 불어온다.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약해져 눈을 떴을 때, 이미 그곳은 하늘 위였다.

      비르셀이 두 팔로 지탱해 준 채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억지로 데려가서 미안합니다. 더 이상 당신을 그 자리에 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

    "화났습니까?"

    "...... 제 마음은 다 알잖아요?"



     정령은 성녀의 감정에 호응한다.

     릴라가 기뻐하면 정령도 기뻐한다.

     릴라가 슬퍼하면 정령도 슬퍼한다.



      비르셀의 몸을 꼭 껴안는다.



    "제가 당신과 함께 있고 싶었어요. 저, 당신을 좋아...... 사랑해요!"

     





     릴라는 사랑을 했다. 첫사랑이었다.

     모든 것을 버려도 좋을 만큼 강렬한 사랑이었다.







     그 후.

     정령의 힘을 잃은 나라는 급속도로 쇠퇴해 갔고, 결국 멸망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그 땅은 저주받은 땅이라고도 불렸지만, 그곳은 정령들의 낙원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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