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23년 12월 19일 23시 15분 5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대성녀 릴라, 너는 국외추방이다. 이제부터 대성녀는 이쪽의 알메리 양이 될 것이다."
마법부 책임자인 시메온 왕자의 말에, 릴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무슨 말씀이세요?"
"모르는 체 하기는. 너는 성녀의 일은 하지 않고 알메리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그 성과만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었잖아. 우리나라에 그런 비겁한 성녀는 필요 없다."
자신도 뛰어난 마법사였던 왕자의 단죄는, 릴라에게는 전혀 이유 모를 것이었다.
릴라는 왕자 옆에서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알메리를 바라보았다.
알메리는 마법부에 새로 부임한 성녀다. 원래는 자작가의 영애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시메온 왕자와 연인 사이라는 소문도 있다.
알메리는 릴라의 수습생이자 시녀가 되어 한 달 동안 함께 행동했다.
어쨌든 처음에는 선배 성녀의 곁에서 일을 익히는 것이 신참의 일이다. 릴라 역시 그렇게 일을 배웠다.
릴라 역시 후배 성녀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정령과 말을 주고받았다. 정령과 인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성녀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일을 포기하고 알머리에 일을 떠넘겨 공로만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는 걸로 되어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추방. 너무 황당한 이야기다.
"한 마디만 해도 될까요?"
릴라는 당황하지 않고 평소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말했다.
"흠, 마지막으로 오랜 공로에 대한 보답을 줄까. 말해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릴라를 칭찬하던 왕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릴라를 노려보았다.
"저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정령에게도. 그것은 정령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그럼, 추방을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정말 일처리가 빠르군요."
어느새 국경 밖의 숲 속에 있었다.
근처에는 인적이 드물고, 배고픈 늑대가 돌아다닐 것 같은 숲이다.
"오랫동안 나라를 위해 헌신한 릴라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릴라 옆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청년이 조용히 화를 내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동안 너무 바쁘게 일만 했으니, 이건 분명 정령왕께서 주신 휴가일 거예요. 잠시 쉬고 싶어요."
열 살에 성녀로 정령궁에 들어가 이듬해에 대성녀가 된 그녀는, 열다섯 살까지 매일같이 일만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일은 없다.
동료 성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세요?"
모르는 상대에게 물었다.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옆에 있었지만, 릴라는 그를 알지 못한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비르셀. 당신을 지켜보는 자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감시자란 뜻일까.
일이라고는 하지만, 릴라의 추방에 동행하게 된 것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보다는 릴라,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싶으십니까."
"어떻게라니요 ......?"
"예를 들어 어떤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 가르쳐주세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글쎄요 ...... 숲 속 샘가에 있는 작고 예쁜 집에서 밭을 일구고 나무딸기를 따면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요"
"그렇군요."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다.
릴라의 한가로운 꿈을, 비르셀은 웃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저곳 같은?"
비르셀이 가리킨 곳에는 작은 집이 있었다.
방금 전 릴라가 말했던 바로 그 꿈의 집이다.
"다행히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군요. 잠시 저곳에서 지내시는 건 어떨까요?"
비르셀의 손에 이끌려 가까이 가보니, 작고 깔끔한 집인데도 사람이 사는 기미가 보이지 않다.
"왕자님이 집을 마련해 주셨나 봐요."
그렇지 않다면 너무 부자연스럽다. 너무 타이밍이 좋다.
"대성녀 릴라를 위한 정령의 선물일지도 모르죠."
◆◇
"매일매일 빌에게 신세 지고 있어."
릴라에게는 생활력이 전혀 없었다.
요리도 빨래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면 밥이 준비되어 있고, 방도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상태였다.
"이렇게 사치스러워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감시자란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는 존재인가 싶을 정도로.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려고, 비르셀이 좋아할 만한 일을 하려고, 그날 릴라는 나무딸기를 따러 나갔다.
집 근처에 있는 딸기나무에는, 항상 새빨갛고 새콤달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릴라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빌도 좋아해 줬으면."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 속에서 나무딸기를 따면서 그를 떠올리자, 볼이 나무딸기처럼 붉어진다.
릴라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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