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7부 240화 돼지에게 주는 선물 From 하인츠
    2023년 03월 31일 02시 46분 1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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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2월 25일은 여신강림제다. 여신이 이 세상에 내려온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 전야제인 12월 24일부터 25일까지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성대하게 축하하는 것이 관례이며, 속칭 '신성한 6시간'이라 불리는 24일 21시부터 25일 3시까지의 6시간 동안 아이 만들기를 하면, 여신의 축복을 받아 튼튼하고 건강한 남자아이를 임신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9월생들이 꽤 많다. 다들 여신의 가호를 받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세상에도 역시 강림제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과 24일 밤 착한 아이의 침대로 산타클로스가 찾아온다는 전승이 존재하여, 다시 한번 산타의 위대함을 느낀다고 호크가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12월의 초입.

     용인형태가 된 하인츠는, 귀여운 손녀딸 린도와 팔짱을 끼며 브랜스턴 왕국의 상점가를 걷고 있다.

         ◆◇◆◇◆

     

    "그래서 할아버님! 반 녀석이 나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괜찮다면 올해 강림제 파티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지 않겠어?] 그랬다니깐요! 꺄아~!"

    "흐음, 정말 사나이답고 솔직한 구애의 말투가 아니겠느냐."

     한때는 우리의 원수이자 일족을 멸종시키려 했던 여신에 대한 원한으로 여신강림절을 극도로 혐오했던 린도였지만, 세속에 익숙해져 사람들의 생활에 섞이게 된 후로는 꽤나 순해졌다.

     여신이 이 세상에 내려온 날이라는 단어에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은 이미 수만 년 전의 일이다. 죽이고, 빼앗고, 죽였다. 서로의 진영에 엄청난 치명적인 손실을 입힌 그 7일간의 전쟁을 지금 와서 되짚어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상실감의 고통뿐이다.

     후회해도, 원망해도, 미워해도 죽어간 우리 동포들이 황천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증오의 불꽃을 태울 수 있을 만큼의 젊음도 잃은 이 늙은 몸은 과거의 원한보다 내일을 살아갈 젊은이들의 눈부신 빛에 눈을 빼앗기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들어보니, 우리 학교에는 강림제 파티날 밤에 전설의 종 아래서 춤을 추는 커플은 영원히 결혼한다는 전설이 있대! 뭐, 그런 어린아이를 속이는 동화 같은 걸 믿는 나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이라는 녀석이 그런 걸 믿는다면, 뭐, 어울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느낌?"

     평범한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린도의 모습에, 짐도 미소를 흘린다. 한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용신의 후예로서, 나와 혼인을 맺어 피를 이어가거나 스스로 멸망하는 두 가지 선택에 고뇌하던 내 손자가 제3의 길을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반 소년은 솔직하고 심지가 굳건한 착한 남자 아이다. 지금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지만, 이 아이를 맡길 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아무리 훌륭한 성인군자라도 늙으면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리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그것 또한 인생이겠지.

    "그래서? 할아버님. 오늘은 뭘 사러 오셨어요?"

    "음. 너와 반 소년, 그리고 호크 녀석에게 줄 강림제 선물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린도가, 발걸음을 멈추고 뺨이 부풀어 오른다.

    "정말! 오랜만의 할아버니과의 데이트인데, 할아버님은 입만 열면 호크, 호크, 호크만 말하네요!"

    "하하하. 그렇게 질투하지 마라. 너야말로 입만 열면 반 소년 얘기만 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아차, 깜빡할 뻔했다. 이그니스 녀석에게 줄 강림제 선물도 준비해야지! 그 녀석도 짐의 소중한 제자였으니까."

    "아, 그 녀석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호크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나아!"

     아무래도 린도와 이그니스는 견원지간이라기보다, 린도가 일방적으로 이그니스 녀석을 물고 늘어지는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둘 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닮은꼴이니 말이다.

     필연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게 되는 호크는 둘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자주 투덜거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사이좋은 누나와 남동생 같은 미묘한 관계인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생명들이 서로 물어뜯고 짖어대는 것 또한 하나의 인연의 형태 아니겠는가.

    "그래서? 할아버님은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녀에게 도대체 무엇을 선물해 주려고?"

    "흠. 린도, 그대는 무엇을 원하느냐?"

    "그야 물론, 멋진 할아버님한테 에스코트를 받는 거야!"

    "으음.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강림제 당일에 골드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미리 약속해 버렸으니."

    "학교의 강림제는 저녁부터 시작해서 여덟 시에 끝나. 계속 함께 있으라는 건 아니고, 그냥 같이 입장해서 내가 반과 춤추는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 녀석도 가족들과 함께 온다고 하던데, 응? 부탁해, 할아버님!"

    "음, 그런 거라면 기꺼이 수락하고말고."

    "앗싸! 그렇게 결정되면 할아버님도 옷을 예쁘게 차려 입혀 줘야겠지!? 호크 녀석이 깜짝 놀라서 말문이 막힐 정도로, 내가 할아버지를 누구보다도 멋지게 차려 입혀 줄게!"

    "하하! 네가 즐거워 보여서 짐도 기쁘구나, 린도."

     이대로라면 여러 옷가게를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 호크와 이그니스, 반 소년, 그리고 린도에게 줄 선물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으니, 정말 다행이다. 잠깐이지만 린도에게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 고르게 할까도 생각했지만...... 이것만은 짐이 직접 모두의 얼굴을 떠올리며 직접 고른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

     사람이나 용이나 미움으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즐겁게 사는 것이 좋다. 부디 모두 웃으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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