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는 스칼렛보다 가문의 격이 더 위였지만, 오냐오냐 하며 자란 부분이 있어서 그 능력을 불안하게 여겨, 똑 부러진 성격의 스칼렛과의 약혼이 정해졌다.
하지만 스칼렛은 약혼남인 웨슬리가 도망치듯이 전혀 자신을 대면하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다.
엘리엇은 그런 그녀의 고민을 듣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 웨슬리에게 다가갈 것을 제안했다.
웨슬리의 친구이기도 했던 엘리엇은 그의 성격을, 그리고 그 얄팍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안경을 벗은 스칼렛이 사실 매우 아름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스칼렛은 처음엔 그런 일이 잘 될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외에는 안경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스칼렛은, 시험 삼아 안경을 벗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화장과 옷차림의 분위기를 조금 바꿔서 웨슬리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칼렛을 피하던 웨슬리는 그녀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순식간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서두의 약혼 파기로 이어진다.
"네가 네 정체를 웨슬리에게만 알려줬다면, 웨슬리는 기꺼이 너와 그대로 결혼했을 텐데...."
엘리엇의 말에 스칼렛은 웃음을 터뜨렸다.
"웨슬리 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었어요. 가문의 사정으로 인한 약혼이긴 하지만,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할 생각이었고, 처음에는 결혼 전까지 웨슬리 님과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요. 결혼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무사히 약혼 파기까지 할 수 있었고요."
"그럼 그 약혼 파기는...?"
"네. 예전에 제가 저라는 사실을 숨기고 만났을 때 제가 웨슬리 님에게 암시를 했어요. 가문이 낮은 저로서는 약혼을 파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결국 그런 저조차도, 웨슬리 님은 눈치채지 못하셨지만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스칼렛은, 안경을 벗고 맑은 눈동자로 엘리엇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웨슬리 님과 약혼이 결정되었을 때, 좋은 약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어떻게 하면 저를 쳐다보지도 않는 그를 돌아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만 몰두했었죠. 그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엘리엇 님은 제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셨고, 언제든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도움을 주셨어요....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나 멋진 분이 계셨는데, 오랜 시간 동안 그 사실을 몰랐네요. 제 눈동자야말로 옹잇구멍이었군요."
엘리엇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단정한 얼굴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서...?"
스칼렛도 볼을 붉게 물들이며,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에야 비로소 알았어요."
엘리엇은 수줍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두 손으로 스칼렛의 손을 감싸고 진지한 눈빛으로 스칼렛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럼 다시 한번 말할게, 스칼렛. 나는 너를 좋아해. 앞으로도 너를 소중히 여길 거라고 맹세해. 나와 약혼해 줄 수 있어?"
스칼렛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기꺼이"
***
웨슬리는 제멋대로의 약혼 파기로 인해 현 당주인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고, 그의 집은 그의 동생이 물려받게 되었다.
그가 사랑했던 아가씨는 환영처럼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려서, 그가 혈안이 되어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웨슬리가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친구 엘리엇의 결혼식에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을 향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