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
    2023년 12월 20일 21시 03분 2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신검에 깃든 신기를 다루며 대지를 진정시키는 성녀 공. 올해의 제사도 훌륭했다. 올해도 왕국은 평안하겠지."

    "가, 감사합니다 ......"



     당황하는 루티아에게, 크로비스 왕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서 알란 왕과 마주한다. 당당한 모습으로.



    "알랭, 진위여부를 떠나서 성녀였던 여인을 투옥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아?"

    "아니, 하지만 이 여자는"

    "그래도 이 나라에 있으면 혼란의 원인이 될 뿐이겠지. 내가 우리나라로 데려가서 아내로 삼겠다."



     이날 가장 큰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화가 난 것은 아란 왕이었다.



    "아, 안 됩니다! 이 마녀는 원래는 그저 빈민!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룡의 사랑을 받아온 성녀가 아닌가. 전혀 부족함이 없는데?"

    "아니, 하지만, 그래서는...!"



     왕은 눈을 부릅뜨고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다.

     이미 성녀도 아닌 죄인의 처우에 대해서 조급해하는 모습이 아니다.



    "물론, 그녀에게 달렸지만."

    "......제게 달렸다니..."

    "나는 네 뜻을 존중할게."



     여기까지 오자 루티아도 이해했다.

     왕은 어떤 목적으로 마리엘을 성녀로 만들고서, 제사는 루티아에게 맡기면서 그 공로를 모두 마리엘에게 주려고 한다는 것을.

     성녀의 힘을 잃을 때까지 연명시키고, 용무가 끝나면 그대로 없애버릴 생각이라는 것을.



    "루, 루티아, 미안하다. 내가 착각했다. 유폐는 취소하지. 다시 생각해 봐."



     방금 전의 고압적인 태도가 뭐였나 싶을 정도로 낮은 자세가, 상상을 확신으로 바꾼다.

     처벌을 취소한들 왕의 본심은 이미 분명하다.

     이 자리만 어떻게 넘기면, 왕은 태도를 뒤집어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믿을 수 없다.

     루티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다.



    "크로비스 님, 당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겠나이다."















     황국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루티아는 맞은편에 앉은 크로비스 왕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차의 주변은 소수의 호위병으로 단단히 둘러싸여 있다.



    "크로비스 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성심성의껏 당신을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너는 자유야."

    "자유란 ...... 어떤 의미인가요. 신검과 용의 가호가 목적이 아닌가요?"

    "황국은 신검을 필요로 하지 않아. 용에 의존하지 않는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그러니 만약 네가 앞으로 신검을 받게 되더라도 마음대로 하면 돼."



     루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용의 가호가 필요 없는 땅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좁은 시야가 부끄러웠다.



    "그럼 왜 도와주셨나요?"

    "작년에 널 보고 첫눈에 반했어."

    "...... 저기, 정말로요?"

    "물론이지. 다른 나라의 성녀를 납치할 수는 없으니 포기하려고 했는데, 미련이 남아서 올해도 찾아왔어. 너를 만날 수 있는 건 건국절의 제사뿐이니까. 어린애 같지 않아?"



     크로비스 왕자의 진심 어린 미소에, 루티아의 긴장이 풀리며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아란이 유력 귀족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애인인 후작영애를 성녀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오길 정말 잘했지."



     역시 왕은 성녀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빼앗아 지하에 가두고 힘만 이용하려 했다. 약간의 자유도, 자존심도 빼앗아 가려고 했다.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루티아도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성녀는 왕족과 결혼하는 것이 관습이라 받아들였을 뿐이다.



     루티아의 가슴에 생긴 것은 공허함과 분노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분노.

     이 사건이 없었어도, 왕과 결혼한들 불행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저는 세상을 너무 몰랐어요"



     루티아는 크로비스 왕자와 마주한다. 자신의 무지와 마주한다. 앞으로의 미래와 마주한다.



    "황국에 대해, 그리고 당신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래, 기꺼이"















     이후 황국에서 살게 된 루티아는 행복하고도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사는 땅이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루티아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 신검은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기로 황국에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신룡의 가호를 받지 못한 왕국은 대지의 흐트러짐을 다스리지 못하여 점차 쇠퇴해 갔고, 그 원인으로 지목된 왕비인 가짜 성녀는 처형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성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백성들은 도망치고, 귀족들은 너도나도 황국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왕국은 꽃이 시들어가듯 멸망해갔다고 한다.

     

    728x90

    '연애(판타지) > 성녀로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0) 2023.12.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