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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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20일 00시 14분 5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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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나는 너와 약혼을......"



     왕궁에서의 무도회.

     약혼녀인 후작영애 엘리자베트가 아닌 남작영애 앙리에타를 에스코트하고 나타난 클로드 왕자는, 엘리자베트를 노려보며 드높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정적인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이만 실례."

    "네? 클로드 님?"



     왕자와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웃고 있던 앙리에타의 팔을 풀고, 왕자 혼자서 멍하니 퇴실해 버린다.

     엘리자베스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앙리에타도, 대연회장에 있던 귀족들도 마찬가지로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왕자가 없어도 무도회는 계속된다.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엘리자베트는 발코니에서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람 ......"



     남작영애 앙리에타와 클로드 왕자의 사이는 엘리자베스도 알고 있었다.

     왕자는 앙리에타를 측실로 삼을 생각이라고 생각하여, 엘리자베트는 왕궁의 관습과 예절을 틈틈이 알려주고 있었다.



    "괜찮아? 엘리?"



     발코니에 서 있는 엘리자베트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디온 님 ......"



     디온 왕의 동생.

     엘리자베스의 미래의 작은아버님이 될 인물로, 어릴 때부터 엘리자베스에게 잘 대해주었다.

     서른다섯 살임에도 불구하고 젊었을 때부터 미남이라서, 마담과 마드모아젤에게 인기가 많았으나 독신을 고수하고 있다. 아무래도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들었어. 파혼이라니, 그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 하지만 안심해.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지켜주고 지지해 줄게."

    "...... 무슨 말씀이세요? 디온 님. 저는 파혼하지 않았는데요."

    "뭐?"

    "실례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서둘러 발코니에서 나갔다.



    (정말 무례해! 내가 클로드 님에게 파혼당했다고 말하다니!)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말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다.

     파혼이라니, 그런 사실은 없다.

     하지만 어쩌면, 클로드 왕자는 그때 엘리자베트에게 파혼을 선언할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앙리에타를 에스코트한 것도 그런 의도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사전에 삼촌인 디온과 상의했을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결심했다.



     ㅡㅡ본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









    "무슨 생각이세요?"



     클로드 왕자의 방으로 돌진한 엘리자베트는, 거의 강압적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 클로드 왕자에게 다가갔다.



    "오늘 파티에서 제가 아닌 앙리에타 씨를 에스코트로 데려간 것도. 그녀를 감싸면서 무언가를 선언하려 했던 것도 그래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셨던 거죠?"



     엘리자베스가 추궁해도, 클로드 왕자는 의자에 앉아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원래 소심한 면이 있는 클로드 왕자지만, 역시 이상하다.

     앙리에타와 거리를 좁힌 뒤에는 그래도 조금은 자신감이 샘솟았는데.



     지금은 마치 산산조각이 난 검술 연습용 인형 같기도 하고, 아니면 매미 껍질 같기도 하다.

     마치 영혼이 별하늘로 산책하러 간 것 마냥, 마음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 엘리. 나는 이제 왕위 계승권을 포기한다. 삼촌과 행복하게 지내 ......"



     짝.



    "으악!"

    "실례했습니다. 얼굴에 위험한 벌레가 있어서요."



     왕자의 뺨을 때린 엘리자베스는, 부드럽게 손의 굳은살을 쓰다듬었다.



    "왕위 계승권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ㅡㅡ그보다, 왜 제가 그분과 함께 해야 하죠? 저와 그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잖아요!?"



     어느 사이엔가 엘리자베트는 절규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전혀 모르겠다. 그런 미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는 ...... 미래를 보았어."

    "미래?"



     클로드 왕자는 슬픈 눈빛으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앙리에타에게 빠져서, 네가 앙리에타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믿고 무도회에서 너와의 약혼을 파기해 버렸어."

    "............"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노했고, 나는 상속권을 박탈당해 북쪽 요새로 보내졌고, 너는 삼촌과 결혼했는데 삼촌이 왕위를 물려받아서........"



     엘리자베트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추운 방에서 혼자 고통을 견디며 생각했어. 너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거기서 깨어났을 때, 나는 너에게 파혼을 선언하기 직전이었어."

    "정말 긴 백일몽이었네요."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긴 꿈을 꾸고 있었을 줄이야.

     엘리자베트는 곧장 클로드 왕자에게 상체를 들이댔다.



    "일단, 저는 당신의 약혼녀예요."

    "아 ......"

    "앙리에타 씨에 대해서는 저도 인식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만약 그녀가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제 불찰이에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한다.

     엘리자베스는 클로드 왕자의 눈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클로드 님, 아직도 저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싶을 정도로 앙리에타 씨를 좋아하세요?"

    "아니, 지금은, 별로 ......"



     이 또한 무례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엘리자베스는 안도했다.

     백일몽에서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무시무시한 미래가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앙리에타 씨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계기는?"

    "......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느 날 문득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어. 지금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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