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24년 01월 21일 20시 24분 5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시몬은 다음 날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혼자서 조용히 방 안에 서 있는 중이다.
그 방은 그녀 혼자 있기에는 너무 넓지만, 잘 정돈된 고급 가구들은 적당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아늑하고 편안하다.
벽면에는 섬세한 레이스가 화려하게 장식된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커다란 옷걸이에 걸려 있다.
시몬은 드레스를 장식한 레이스를 살짝 만져본 후, 주황색 불꽃이 반짝이는 벽난로 앞에 자리를 옮겨 앉고서 가녀린 두 팔로 양 무릎을 끌어안았다. 벽난로에서는 탁탁거리며 힘차게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환상적으로 흔들리는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몬은 오래도록 사랑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그가 마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옅은 금발에 부드러움을 찬양하는 짙은 남색 눈동자. 꼿꼿하게 뻗은 등.
세상에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을까, 어린 마음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의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도 귀에 착착 감겼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며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친절했다. 내가 넘어질 것 같으면 그 힘찬 팔로 안아주었고, 내가 그의 손을 잡으면 그대로 따뜻하게 손을 맞잡아주었다. 자주 같이 놀아주었고, 시내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골라주었다. 내가 놀다가 지치면 나를 업어주었는데, 나는 그의 따스한 등에 기대어 잠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멀리 외출할 때는 나에게 줄 선물도 빼놓지 않았다. 나에게 어울릴 거라며 꽃을 형상화한 예쁜 머리 장식을 사다 주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그를 안아주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럽게 미소 지을 때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기뻤다.
정말로 그를 사랑했다.
이 마음이 그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그를 보고 싶었고,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동경도 섞여 있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나의 길고 아련한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벌써 2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좀 더, 훨씬 더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시 나는 몰랐다.
그때 울고 있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격려해 주었던,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 사람과 나는 앞으로의 삶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
누군가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시몬의 대답과 동시에 한 남자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시몬의 옆에 서게 될 그는, 따뜻한 불빛을 내뿜는 벽난로 앞까지 걸어오더니 시몬의 옆에 천천히 앉았다.
침묵한 채 벽난로 불길을 응시하는 시몬에게, 그는 말을 건넸다.
"...시몬. 또 떠올리고 있었어?"
시몬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꿔 벽난로 불꽃을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숙이자, 그는 살짝 웃으며 오른손을 뻗어 그녀를 말렸다.
"그렇구나.... 하지만 불에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위험해."
시몬은 그 말에 눈을 조금 크게 뜨며 웃음을 터뜨렸다.
"놀랐어, 같은 말을 하는구나....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 괜찮아."
시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시몬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잊을 수 없어?"
"...그래. 이렇게나 빼닮은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시몬도 눈앞에 있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벽난로 불빛을 비추는 짙은 남색 눈동자도, 단정하게 정돈된 얼굴도, 그 윤곽을 채색하는 부드러운 옅은 금발도, 낮게 깔리는 목소리도, 그리운 그를 쏙 빼닮았다.
두 사람은 다시 벽난로 불길로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시몬이었다.
"저기, 기억나? 옛날에 이 곳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모님께서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셨잖아. 오빠도 나도 중간에 자주 잠이 들면 아버지가 들어서 침대에 데려다주곤 했었어."
"그래. 정말 그립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하는 그에게, 시몬은 미소를 지었다.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야.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글쎄요. 분명 구름 위에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거야."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프레드."
시몬의 어머니와 프레드의 아버지가 재혼했을 때, 의붓자식인 시몬은 5살, 프레드는 6살이었다.
시몬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서, 프레드의 아버지는 혼자서 남매를 키웠다. 시몬을 친딸처럼 아꼈던 그는 이후 재혼을 하지 않았다.
그런 시아버지를 시몬은 단순한 아버지 이상으로 존경했다.
프레드가 시몬의 오빠가 되었을 때만 해도, 장난꾸러기 프레드는 오빠라기보다는 부모의 사랑을 두고 서로 다투는 어린 아이였지만, 그는 점차 부드럽고 자상하며 아버지를 닮은 아름다운 남자로 성장해 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몬을 프레드가 여동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로서 그녀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어느새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프레드가 시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후였다.
시몬은 그런 그의 말이 싫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와 함께 할 수 있음에 안도감을 느꼈고, 그에게 은근히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에게 결혼을 제의했다.
"...나는, 언제쯤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중얼거리는 프레드의 말에, 시몬은 빙긋이 웃으며 그에게 살짝 다가가 그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살짝 얹었다.
"정말, 오빠도 참. 아버지와 오빠를 비교할 수는 없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잊을 수도 없지만.......하지만 나는 오빠도... 아니 프레드도 사랑해."
프레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에게 미소를 지었다.
"벌써 밤이 늦었어. 이제 잘까?"
"...아니. 조금만 더, 이대로..."
부모님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을 각자 떠올리며, 흔들리는 벽난로의 불빛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남매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728x90다음글이 없습니다.이전글이 없습니다.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