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79화, 눈이 내린다......
    2021년 12월 17일 11시 34분 4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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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kakuyomu.jp/works/1177354054890293039/episodes/1177354054893733587

     

     

     눈이 내린다.

     

     지상에서 무수히 살아가는 생물의 생각에 좌우되지 않고, 하늘의 뜻대로 내려온다.

     

     나뭇가지에 구름을 실은 것처럼 하얗게 물드는 가느다란 나무들.

     

     눈의 양탄자가 깔리는 순백의 대지.

     

     오늘 아침에 내리는 눈은 온통 하얗고 새벽의 어두컴컴함과 조용함이 어우러져서, 추위도 잊고 눈을 빼앗길만한 환상적인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 [2식]은 아직인가."

     "예. 어젯밤보다 자주 주변을 둘러보고 있습니다만, 모습이 전혀....."

     "칫!!"

     

     하남의 대답을 듣고, 한기 때문에 벌개진 코와 입을 짜증 섞어 비빈다.

     

     지금이 잔코쿠로서는, 이 경치를 즐길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고국에 전해야만 하지만, [2식]을 두려워하니 쓸만하지 않다며 다른 마물은 데리고 오지 않았고, 편지를 줘서 보낸다는 라르만의 흔한 방법은 취할 수 없다. 이 눈 속을 사람이 뚫고 귀환하는 것은 무모.

     

     하지만, 쌓인 눈에 의해 발이 묶인 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치이이...... 귀환 명령은 절대였을 터. 그 쇠사슬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 둔한 녀석! 왜냐!?'

     

     몇 차례나 손목의 쇠사슬 모양 마도구에 명령하였음에도, 그 마수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잔코쿠의 언짢음을 개의치 않고, 눈은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다.

     

     그런 눈을 맞으면서도,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더 식량을 긁어모으라고 명령받은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곳곳을 수색하고 있는 중이다.

     

     "....... 모두가 돌아오면 보고해라. 다시 카스 습지대로 간다."

     "예."

     

     건물로 돌아가면서 지시를 내리고, 하남의 대답을 들음과 동시에 문 안으로 들어간다.

     

     [늪의 악마]의 강대함은 조사를 끝냈지만, 라르만의 비장의 수인 [2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귀환은 할 수 없다.

     

     잔코쿠의 마음속에, 짜증과 초조함이 들끓는다.

     

     

     

     ........

     

     ......

     

     ...

     

     

     

     대원들이 공터에 모이기 시작한다.

     

     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한결같이 찾아서 손해 봤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바보처럼 눈이 많은 이런 벽지의 촌락에 비축된 게 있을 리가 없지......"

     "노인만 있었으니, 그다지 먹을 필요도 없었던 걸까?"

     

     전날까지 있었던 죄의식은 사라졌는지, 눈에 파묻혔는지, 아무렇게나 그런 대화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빨리 이런 곳에서 돌아가고 싶은데....."

     "맞아......"

     

     대원들의 시선이, 기분 나쁜 것이라도 보는 것처럼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한 민가에 집중된다.

     

     저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다.

     

     "아니면 다른 창고나 비축고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소위님께 보고하고서ㅡㅡ"

     

     하얀 숨을 내쉬면서 제안하는 하남.

     

     고개를 기울이던 대원 중 한 명이, 어떤 이변을 깨닫는다.

     

     "어, 어이......"

     "음? 저건......."

     

     은색의 세계에, 단 하나의 이색.

     

     군청색의......괴물.

     

     "이제야 돌아왔냐고....."

     

     공터에서 보이는 부자연스럽게 펼쳐진 평원에는, 안개의 날개를 분출시키며 공중에 떠오른 [2식]의 모습이 있었다.

     

     ".....................엥?"

     "음? 왜 그래."

     

     하남의 얼빠진 목소리를 듣자, 선배 대원들이 물어보았다.

     

     "어, 어라......"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쇠, 쇠사슬이......"

     "쇠사슬?"

     

     떨리는 손끝으로 가리키는 쪽에 있는 [2식]이, 몸의 가장자리부터 흩어진다.

     

     ".....쇠사슬이.....없어......"

     "그런......"

     

     그렇다, 이제 꼭두각시의 몸이 아니다.

     

     해방되었음이 틀림없는 ―――――안개의 괴물.

     

     ".......후, 후퇴에에―――――!!"

     "도망쳐도망쳐도망쳐어!!"

     "건물.......아니!! 안개가 되어서 들어온다!! 수, 숲이다!! 숲으로 달려!!"

     

     훈련된 대원들이 즉시 판단하고는, 엄폐물이 될 나무들이 있는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무슨 소란이지."

     "소위님! [2식]의 목의 쇠사슬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여기에 있습니다!!"

     "......."

     

     하남의 외침을, 몇 초 동안 되새기는 듯 머릿속에서 되풀이한다.

     

     얼마나 비상사태인지를 이해했는지, 잔코쿠는 단번에 핏기가 가시고 머리끝에서 얼어붙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그럼!!"

     "!? 기, 기다려ㅡㅡ"

     

     대원들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가는 잔코쿠.

     

     그 모습을, 상공에서 푸른 안개가 차갑게 바라보고 있다......

     

     

     

    ♢♢♢

     

     

     

     "하아, 하아......"

     "조금만 더 떨어지자! 어디까지 쫓아올지 모르니까!"

     

     눈이 쌓인 숲을 달려간다.

     

     그 안개 괴물이, 자신들을 좋게 생각할 리는 없다.

     

     당연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그 쇠사슬에 묶여서는, 도구와 마찬가지로 사용되어 왔으니까.

     

     부대 전원이, 어느 사이엔가 선두에 선 잔코쿠를 뒤따른다......

     

     눈에 발목을 붙잡고, 때로는 넘어질 뻔하고, 때로는 기어가면서......

     

     호흡도 어렵고, 다리도 올라가지 않게 되었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언제 나타날지도,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등 뒤에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과 초조함을 품고, 부대는 전진한다.

     

     "하아, 하아, 큭......"

     

     그리고 점점 비슷한 경치가 이어지는, 나무의 미궁으로 들어가서......

     

     

     

     

     

     

     

     

     

     

     한 소년과 만났다.

     

     

     

     

     

     

     

     

     이 눈 내리는 숲에서, 단 혼자 서 있다.

     

     그 흑발의 소년의 등을 보고, 대원 모두가 걸음을 멈춘다.

     

     주변 일대를 뒤덮은 백은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이질.

     

     평범하게 보이는 얇은 복장의 소년이라는 사실이, 그것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누구나 이 상황에 대해 여러 추측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어떤 대원이 추위 때문에 재채기를 했다.

     

     "엣취."

     

     조용한 눈의 세계에서, 그건 잘 들렸다.

     

     "ㅡㅡ춥네."

     

     눈앞의 눈의 경치를 바라보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등을 보인 채.

     

     "이렇게 많은 눈도 그칠 거다. ......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공허하게 보이는 칠흑의 눈동자가 잔코쿠의 부대를 바라본다.

     

     깊은 어둠에 발이 사로잡힌 것 같아서, 대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감과 초조함,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한다.

     

     ".......너희들이 있던 집 이외의...... 촌락의 어느 집에서도 연기가 올라가지 않아. 불을 일으키는 기척조차 없어. 어떻게 될 일일까."

     

     누구인지는 불명.

     

     "뭐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하지만, 본능일까, 지금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자연스레 이해되었다.

     

     "너! 먼저 이름을 대라!"

     "닥쳐라."

     

     눈앞의 소년이 아니다.

     

     측면에서 갑자기 나타난 강렬한 살기와 함께, 여성의 딱딱한 목소리로 위협한다.

     

     "다, 당신은......"

     

     한번 본 일이 있었던 미녀를 다시 본 하남은 더욱 혼란스러워져서, 사태의 이해가 늦어진다.

     

     "주인님의 안전. 빨리 무릎 꿇어."

     "가르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른 쪽 측면에서도 귀여운 목소리로 명령한다.

     

     들이민 커틀러스가, 무기질 하게 반짝인다.

     

     ".......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고 있잖아."

     "그악!?"

     

     갈색 미녀가 하남의 발을 무겁게 짓밟아서,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한다.

     

     "대, 대장......"

     "......."

     

     이상 사태에 곤란해하는 잔코쿠.

     

     불안이 가속되는 대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모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무릎을 꿇으라는 지시가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

     

     "...... 그래, 수고했어."

     

     마왕이 문득 허공에 대고 말을 건다.

     

     그러자......

     

     "그런."

     "말도 안 돼......"

     

     경악하는 잔코쿠와 대원들의 앞에 나타나는 형체.

     

     "ㅡㅡ"

     

     마왕의 옆에 나타나더니 내려온, [2식]

     

     "그한테 부탁해서 너희들을 이곳으로 유도하게 만들었어. ......이 아이는 온순하고 착한 아이야."

     

     믿기 어려운 광경.

     

     쇠사슬의 개목걸이도 없이, 마치 기르는 개처럼 [2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

     "......"

     

     지시를 기다릴 수 없이 자연스레 무릎을 꿇는 대원들을 보고, 잔코쿠도 서둘러 무릎 꿇는다.

     

     "소위님......"

     "왜."

     "저 소년은, 아마 그 [늪의 악마] 와 싸우고 있던 소년입니다....."

     "뭣이!"

     

     하남과 잔코쿠의 작은 목소리의 대화를 듣고, 부대 전체에 동요가 일어난다.

     

     하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소년은 그 강력무비한 [늪의 악마]를 쓰러트린 강자인 것이다.

     

     "자, 일단은 말한 대로 이름을 대볼까. 나는 마왕이다."

     

     본론으로 빨리 넘어가고 싶은지, 매우 담백한 자기소개.

     

     마왕.

     

     누구나 할 것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흑의 마왕]의 존재.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만....."

     

     마왕의 분위기가 바뀜에 호응하여, 공기도 일변한다.

     

     선명한 갈색의 미녀와 귀여운 메이드조차, 식은땀을 흘린다.

     

     [2식]도 두려운 모양인지, 자세를 낮추어 마왕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ㅡㅡ촌민들을 죽인 자는......너희들?"

     

     

     

     간소한 마왕의 물음에, 심장이 난폭하게 두방망이질을 친다.

     

     이 문답은, 자신들의 생사에 관련되었음은 쉽사리 상상할 수 있다.

     

     마왕의 눈동자가, 그렇게 이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장의 고동에 괴로운 가슴을 부여잡는 대원들에게, 마왕은 무표정한 채로 이어서 말한다.

     

     "너희들은 라르만의 부대였지. 제 것인 양 그 촌락의 집을 쓰고 있었는데.....설마, 지붕 밑에서 자고 싶어서 촌민들을 죽였다던가?"

     "아, 아뇨, 마왕 폐하. 그건 오해이옵니다."

     

     잔코쿠가 매끄럽게 말하기 시작한다.

     

     "극비 임무를 위한 거점으로서 가옥의 사용을 부탁하려고 저희들이 도착했을 대는..... 이미 촌민들이 죽어있었습니다. 노인들만 있는 마을인 모양이었으니, 이 맹렬한 한기를 견디지 못한 것이겠지요....."

     

     마치 슬퍼하는 듯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떨구는 잔코쿠.

     

     "...... 최근까지 생활하고 있었던 기척이 있었는데? 그리고 땔감도 있었고."

     "그, 그건ㅡㅡ"

     "저희들이 도착하기 며칠 전까지는 생존했던 모양입니다."

     

     말이 막히는 기색을 보이는 잔코쿠에 이어서, 하남이 대답한다.

     

     "장작이 있어도, 식량이 없으면 추위를 견디기 힘듭니다. 가옥들을 수색해 보았지만, 식량 종류는 없었습니다. 노인의 몸으로는 사냥도 어려웠겠지요.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저희들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래? 대뜸 너희들의 짓이라고만 생각했었어."

     

     잔코쿠는 눈치가 좋다.

     

     마왕의 담담한 말투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무표정에서, 아직도 의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는 만일을 위해 선수를 둔다.

     

     "마왕 폐하. 저희들은 밀명을 받은 특수부대. 설령 촌락을 습격한 것이 만의 하나라도 저희들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나라를 위함입니다. 나라의 사정에 관련되었다고 한다면, 왕의 입장인 마왕 폐하가 관여한다면, 국제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어쨌든 라르만 공화국의 문제이니, 이 이상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넌지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말없이 잔코쿠와 시선을 교환하는 마왕.

     

     "......어이, 이 녀석들 안 죽여?'

     "아직. 지금은 조용히 해."

     "주군의 명을 기다려."

     

     이쪽으로 뛰어들려고 들썩거리는 수인 소녀.

     

     메이드복 차림의 귀여운 분홍머리 검사.

     

     조용하고 주의 깊게 부대를 바라보며 주군의 명령을 기다리는 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의 암살자.

     

     전부 눈을 부릅뜨게 할 아름다움이지만, 이쪽으로 향하는 눈매는 적의로 가득 차 있다.

     

     잔코쿠는, 부하들이 이 마왕을 따른다는 기색을 날카롭게 탐지했다.

     

     "거기다 증거나 이득도 없이 저희들을 처단하는 것은, 마왕 되시는 분의 위엄도 손상될지도 모릅니다."

     "......"

     

     마왕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안타깝다는 듯......

     

     "......이 자리의 만남은,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없습니까...."

     

     여기서 마무리를 짓겠다는 듯, 하남이 뜻을 굳히고는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어디까지나 저자세로. 살기등등한 부하들의 기분을 해치지 않도록.

     

     "......그런가......"

     

     마왕이 깊게 호흡하고는, 숨을 길게 내뱉는다.

     

     정말 슬픈 듯한.......어딘가 미안해하는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뜨거운 내심을 내비치는 듯한 하얀 숨결이 하늘로 올라가서...... 덧없이 사라진다.

     

     부하인 미녀들이, 분노를 곱씹으며 꾹 참는다.

     

     여기까지인 것이다.

     

     이성적인 주인은, 올바른 말로 설득시키면 그 힘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 가능성은 언뜻 깨닫고 있었다.

     

     잔코쿠 일행들조차, 그런 마왕의 기질을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칫 잘못할 뻔한 이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문제는 산더미 같다.

     

     이치의 바깥에 있는 듯한, 강대하기 그지없는 마왕.

     

     그에게 심취한, 충실하고 우수한 부하들.

     

     거기다, 마왕에게 길들여진 [2식].

     

     잔코쿠 일행은, 귀국 후에 일어난 국가규모의 대소동을 벌써 예감하고 있었다.

     

     "......그 검."

     

     문득, 마왕이......잔코쿠의 허리의 검에 눈길을 주며 중얼거렸다.

     

     "이, 이것 말입니까?"

     "좋은 검이네."

     

     헤어질 때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

     

     "가, 감사합니다! 설마 폐하 정도의 분께서 칭찬하실 줄이야!"

     "소중히 다뤄. 그 정도의 검이라면, 베는 맛이 꽤 좋을 테니까."

     "예! 조언 감사드립니다!"

     

     촌민한테서 새롭게 손에 넣은 검을 칭찬받은 잔코쿠는, 희희낙락하며 대답하나.

     

     "날밑의 문양이 독특하네."

     "아 이건...... 무슨 문자인지, 저로서는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잔코쿠가 든 검의 날밑에 새겨진 각인을 바라보던 마왕이, 평탄한 어조로 말한다.

     

     

     

     

     

     

     

     

     

     

     

     

     

     

     

     

     

     그건 말이지.......

     

     

     

     

     

     

     

     

     

     

     

     

     

     

     

     

     

     

     ㅡㅡ [크로노]라고, 새겨져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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