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8화 면회예약(2)
    2024년 06월 10일 09시 17분 2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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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외네. 슈 씨는 서류 작업을 잘하는구나)



     원예를 좋아하고 가벼워 보이는 분위기의 슈에겐 의외로운 특기다. 빠르게 작성한 서류를 라이언에게 건네주며 훑어보자 라이언은 문제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는 빙긋이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새로운 서류를 앞에 두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펜을 들었다.



     사람은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슈를 바라보고 있던 멜로디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슈 씨를 보고 있자니 왠지 ......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음~! 피곤하다! 라이언, 조금만 쉬자."



     창문 너머로 들리는 휴버트의 목소리에 멜로디는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라이언은 휴버트에게 실망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이미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라이언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알겠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차를 가져다 드리지요."



    "아, 그럼 저 그럼 화장실 좀 다녀오겠슴다."



    "휴버트 님, 저는 바깥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



     그렇게 라이언, 슈, 다이랄 세 사람은 일단 집무실을 떠나고 휴버트 혼자 남게 되었다.



    (기회야!)



     빨리 요구사항만 전달해야겠다며 멜로디는 눈앞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응?"



     책상에 엎드려 있던 휴버트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 새가 부리로 창문을 쪼아댄 줄로만 알았는데 창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방금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아차, 마법을 풀지 않았기 때문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거야)



    "[투명화] 해제."



    "ㅡㅡ!? 무슨......."



     푸른 하늘이 보이는 2층 창문 너머로 갑자기 날개 달린 메이드 복장의 소녀가 나타나자, 휴버트는 당연히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멜로디는 입에 손가락을 대고서, "쉿이에요!"라는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귀에 제대로 들리는 발성으로 휴버트의 목소리를 막았다. 멜로디의 제스처에 반응한 휴버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고, 이 상황은 어떻게든 진정되었다.



     멜로디가 양쪽으로 열린 창문의 중앙을 정중히 가리키자 휴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창문을 통해 흐르는 듯이 지나간 멜로디는 방 한가운데로 가볍게 내려앉았고, 새하얀 마법의 날개는 빛의 알갱이가 되어 공중에 녹아내렸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휴버트 님."



     휴버트를 돌아본 멜로디는 부드럽게 무릎을 굽혀 카테시를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그건 상관없지만, 정말 깜짝 놀랐어, 멜로디. 심장이 튀어나올 줄로만 알았다고."



     휴버트에게 멜로디는 눈썹을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휴버트 님 외에 다른 분에게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거든요."



     루틀버그 영지에서 멜로디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휴버트뿐이다. 하인들의 입이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비범한 마법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비밀이 발각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놀라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짓는 멜로디는 정말 셀레나를 닮은 것 같아 ......가 아니라)



     휴버트는 무심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불필요한 생각을 지웠다. 멜로디는 가끔씩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를 닮은 제스처를 취하기 때문에 반응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이다. 조카와 동갑내기인 소녀에게 이상한 감정을 갖고 싶지 않은 삼촌의 자존심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멜로디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휴버트 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멜로디,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 용건을 말해줄 수 있겠어?"



    "네.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시간이 좀 길어질 것 같으니 시간을 좀 주셨으면 해서요. 가급적이면 왕도의 저택으로 와 주셨으면 합니다만."



    "글쎄. 그럼 저녁 식사 후에는 내 방에서 쉬기로 했으니 그즈음의 시간에 마중 나와 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그럼 밤이 되면 방으로 모시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휴버트와 일정을 맞출 수 있게 되어 멜로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순조롭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집무실로 향하는 발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그럼 휴버트 님, 밤에 찾아뵙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토라스파렌자]"



     멜로디의 모습은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집무실에는 휴버트만 남았다. 열린 창문이 살짝 흔들리자, 살짝 서늘한 바람이 휴버트의 뺨을 어루만졌다.



    "자, 이번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휴버트는 창 너머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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