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6장 프롤로그(1)
    2024년 06월 07일 22시 25분 2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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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건은 학교 무도회 개최를 앞둔 어느 날, 왕립학교에서 일어났다.



     인기척이 없는 학교의 한 구석.

     백작영애 세실리아 레긴버스와 왕세자 크리스토퍼 폰 테오라스,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다.



     애인끼리의 밀회인가 하면,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긴박한 상황이었다.



    "크리스토퍼 님! 정신 차리세요!"



     세실리아가 외쳤지만, 그 비통한 목소리는 눈앞의 남자, 크리스토퍼에게 닿지 않았다. 가시 같은 검은 문양을 온몸에 새긴 그 남자는, 냉철한 시선으로 세실리아를 노려본다.



     그리고 허리에서 검을 뽑아 그 끝을 세실리아에게 겨누었다.



    "ㅡㅡ!?"



     숨을 멈춘 세실리아는 무심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학교 무도회 개최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이상해진 그를 쫓아가 보니 이런 갑작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온몸에 떠다니는 가시 같은 무늬가 비상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가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마력의 존재를 세실리아의 눈은 선명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저건 루틀버그 씨에게 달라붙어 있던 ......)



     세실리아의 가슴이 꽉 조여왔다.



     루시아나 루틀버그 백작영애.

     수수께끼의 검은 힘에 조종당해 쓸모없다는 이유로 무참히 목숨을 빼앗긴 불쌍한 소녀. 친구가 되지도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진 동급생.



    (설마 그것과 같은 무언가가, 이번에는 크리스토퍼 님에게?...... 그렇게는 안 돼) 



     두려움에 지배당하려던 마음에 용기의 빛이 비친다.



    "...... 더 이상은."



     뒤로 물러나 있던 다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도, 죽게 두지 않아!"



    (이번에야말로 돕겠어. 크리스토퍼 님을 되돌려 보이겠어 검은 힘 따위에 지지 않아!)



     마음을 잃은 냉철한 눈빛과, 결의의 빛을 지핀 열정적인 눈빛이 마주 본다.



     크리스토퍼를 구하기 위한 세실리아 단 혼자의 싸움이 지금, 시작된다.......



















    "해냈어! 세실리아짱의 단독 전투로 들어갔어, 안나 언니!"



     TV 화면의 텍스트를 읽으며 컨트롤러를 든 소녀, 구리타 마이카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잘했어, 마이카. 크리스토퍼 루트 완전 공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어!"



     옆에 앉은 소녀 아사쿠라 안나도 자기 일처럼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플레이하고 있는 것은 소녀 게임 '은빛 성녀와 다섯 개의 맹세'이다. 오늘은 공략 대상자 중 첫 번째인 왕태자 크리스토퍼를 공략할 생각인 것 같다.



    "나, 이 이벤트 때 항상 다른 캐릭터가 도와주러 왔었어."



    "나도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그랬어. 다른 미남이 있으면 호감도를 높이고 싶어지는걸."



    "맞아맞아~"



     화면에는 1대 1로 싸우는 세실리아와 크리스토퍼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는데, 이 이벤트는 공략 대상과의 친밀도에 따라 상황이 변동되는 설정이다.



    "이벤트 발생 시 크리스토퍼한테 다른 캐릭터의 두 배 이상의 호감도가 있어야 1대 1 전투를 할 수 있다니, 처음 플레이할땐  이렇게 되기가 어려워."



    "이 이벤트가 없어도 크리스토퍼는 공략 가능하니깐.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크리스토퍼를 제외한 네 명 중 호감도가 가장 높은 캐릭터가 조력자로 등장한다는 설정이라서, 1대1 전투 패턴이 있다는 걸 공략 사이트를 보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어."



    "조력자는 사실상 맥스웰이나 렉티아스지?"



    "이 시점에서 등장 횟수가 적은 뷰크나 슈레딘은 어렵지만, 노리고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 같더라? 적은 기회지만 호감도를 올리면서 다른 세 명과 친해지지 않으면 된다고 해."



    "그렇구나. 이게 끝나면 도전해 볼까? 기대돼! 힘내보자, 안나 언니."



    "그래, 둘이서 모든 이벤트를 달성하자, 마이카짱."



    "...... 게임하는 건 좋지만, 왜 내 방에서 하는 건데?"



     TV 화면 앞에서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등 뒤로, 나른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이카의 오빠이자 안나의 소꿉친구인 구리타 히데키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방 침대 위에서 멍하니 만화를 읽고 있었는데, 지금은 옆으로 누워 두 사람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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