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켄돌은 이리스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보다 다소 지쳐 보였다.
이리스는 켄돌의 손을 뿌리치고는, 무심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 무슨 일로 오셨나요?"
켄돌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딴 사람처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보지 말아 줘, 이리스. 너와는 오랜 인연이잖아. 다시 한번 너와 시작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이리스의 뺨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 저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헬레나와 약혼하셨잖아요?"
"헬레나와는 이미 헤어졌어. 나에겐 너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
이리스는 즉시 고개를 크게 저었다.
"이미 끝난 일이에요."
켄돌의 눈썹이 찡그려지더니, 눈동자에 어두운 색이 떠올랐다.
"이리스, 마베릭을 좋아하게 된 거지? ...... 그가 조금 친절하게 대해준다 해서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의 바람 마법은 나도 본 적이 있지만 ...... 그는 특별해. 천재 중의 천재야. 게다가 그 빼어난 외모까지. 그런 그가 마법도 못 쓰는 너를 상대할 거라 생각해?"
입을 꾹 다물고 조금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이리스에게, 켄돌은 다독이듯 말했다.
"다시 내게로 오라고. 마베릭이 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건 네가 그 아이를 돌봐주고 있기 때문이잖아? 나도 들었어, 마베릭이 막내 동생을 그렇게 귀여워한다는 말은. 나도 아까 후드 뒤에서 살짝 봤는데, 그 괴물 같은 모습의 막내 동생을 네가 돌봐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마베릭은 너를 ......"
"그만하세요!"
'짝' 하는 건조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켄돌은 멍한 표정으로, 방금 전 이리스의 손바닥을 받아낸 왼쪽 뺨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리스의 두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넘쳐나고 있었다.
"저에 대해선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레노 님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다시는 제 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 주세요."
이리스는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의 파혼을 통보받았을 때보다 더 마음이 얼어붙어서, 눈앞에 서 있는 켄달이 마치 전혀 모르는 남처럼 보였다.
이렇게 무정한 말을 했던 적이 없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의 그는 이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켄돌에게 등을 돌리고 달려가는 이리스에게, 켄돌은 그 얼굴을 아쉬운 표정으로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흥, 뭐야, 이리스. 이리스, 넌 지금 잘못 선택한 거라고. 마베릭도 너보다 헬레나를 택할 것이 분명해. 마베릭이 헬레나를 만나러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더라."
(...... 마베릭 님이, 헬레나를 만나러 ......?)
이리스의 가슴이 두근 하고 불쾌한 소리를 냈지만, 이리스는 켄돌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려갔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노점이 즐비한 거리로 돌아와, 조금 떨어진 노점 앞에서 여전히 줄을 서 있는 매버릭과 레노의 모습을 발견했다.
레노가 이리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리스, 이쪽이야!"
이리저리 달려온 이리스는 조금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아직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 이리스.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마베릭이 이리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리스는 당황하여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그의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이제 곧 차례가 되겠네요. 레노 님은 어떤 주스를 드실래요?"
"음, 나는 ......"
아까까지와는 달리, 창백한 얼굴에 애써 미소를 짓고 있는 이리스를 마베릭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