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붉은 동굴 5
    2023년 09월 22일 18시 49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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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으으......."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미칠 것만 같다. 시간 감각이 없어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진다.



     마법진의 위에 대고 있는 왼손이 저주에 침식되어 검게 변하고, 온몸에 불타는 듯한 통증과 열이 퍼져나간다.



    (아직 부족해...... 더욱 많은 마력과 피가 필요해.)



     피가 빠져나가면서 어지럽고 현기증이 난다. 그래도 확실히 저주 자체가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분명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담아서 필사적으로 저주를 밀어낸다.



    "티아나! 대체 무슨 짓을......"



     등 뒤에서 펠릭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가 무사히 그 마물을 쓰러뜨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곧장 무슨 짓을 하는지 눈치챘는지, 펠릭스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내 몸을 받쳐주었다.



    "뭔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마법진에 담을 수 있는 마력을 빌려달라고 말하자,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이제 내 마력만으로는 한계가 가까워졌다. 역시 이 저주는 생각보다 강하고 복잡한 것이었다.



     예전처럼 내가 흡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직접 마법진에게 마력을 넣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마력과 파장을 맞추지 않으면 마법진도, 내가 누르고 있는 저주도 모두 무너져 버린다.



     내가 최대한 통제하겠지만, 최대한 맞춰달라고 말하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슬슬 위험할지도 몰라...... 왼쪽 몸의 감각이 없어졌어.)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몸이 삐걱거리고, 통증으로 의식이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런 나를 보고 펠릭스는 입술을 꽉 깨물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곧장 펠릭스는 마법진 위로 손을 찔러 넣었다. 바닥에 그린 자신의 피를 통해 따뜻한 마력이 흘러 들어온다.



    (다행이야...... 펠릭스 덕분에 안정되기 시작했어)



    "콜록, 콜록......앗......"



     그 와중에, 기침을 한 내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나온다.



     왼팔은 완전히 저주로 검게 물들어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면서 정말 한계가 가까워졌음을 깨닫는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이젠 의식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다.



    "티아나, 이제......."

    "페, 펠릭스! 집중해!"



     나를 말리려던 펠릭스가 마법진에서 손을 떼려고 해서, 그만 꾸짖는 듯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펠릭스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마법진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 방금의 큰 소리로 인해 내장이 위험해진 것 같아...... 그래도 역시 펠릭스는 착한 아이야)



    "괜찮, 으니까 ...... 미안 ......"



     어깨로 입의 피를 닦고서 입꼬리를 올리자, 펠릭스는 괴로운지 얼음색 눈을 가늘게 하며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이미 의식이 흐릿해져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다. 기력만으로 필사적으로 저주를 밀어내려고 애를 쓴다.



    (앞으로, 조금...... 지금 여기서 다 쏟아내야만 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런 마음을 담아서 펠릭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내 의지가 전달되었는지,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진을 향해 단숨에 마력을 쏟아부었다.



    "......!"



    (제발, 제발──!!!!)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낸 순간, 무언가가 터지면서 눈앞의 안개가 단숨에 걷히는 듯한 감각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팠던 몸 전체가 따스하고 그리운 것으로 채워졌다. 이제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행이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안도하는 순간, 눈앞의 풍경이 기울어졌다.



    "티아나! 지금 당장──......"



     펠릭스가 나를 끌어안으며 이름을 불러준다. 하지만 중간부터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아, 역시 아무것도 안 변했잖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 표정은, 어린 시절과 똑같아서 작은 미소가 흘러나온다.



    "────"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에게 손을 내밀어 괜찮다고 전하고서, 조용히 의식을 놓았다.





     ◇◇◇





    "...... 아얏......"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극심한 통증으로 단숨에 눈을 떴다. 여기저기 아파서 어디가 아픈지조차 알 수 없다.



     눈을 떠서 눈동자만 움직여보니, 익숙해지기 시작한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지금은 아무래도 낮 시간인 것 같다.



    (여기는...... 왕성의 내 방이야. 붉은 동굴에서 의식을 잃은 후 펠릭스가 데려다준 것이 분명해)



     모든 부위가 너무 아파서 몸을 뒤척일 수도 없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일단 치유 마법으로 가능한 한 온몸을 치료한 후, 일단 정리를 하려고 생각했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력이, 증가했어...... 그것도 여태까지의 두 배 정도로)



     동시에, 역시 그 최악의 가설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우선 치유마법을 사용해 몸을 치료해 나간다.



    "...... 눈을, 뜨셨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몸을 일으킨 나는, 바로 옆 의자에 펠릭스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도 무사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무사히 몸을 고친 나는, 서둘러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죄송해요, 제가 기절해 버려서...... 아, 저주는 무사히 풀렸나요!?"

    "............"



     그렇게 물어도, 펠릭스는 왠지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렇게까지 걱정해 주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자, 어느새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손이 그의 따스한 손바닥에 감싸여 있다.



     펠릭스는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손바닥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기도하듯 꽉 잡아주었다.



     지금까지의 그 답지 않은 모습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그런 나를 향해, 그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왜 아무 말도 안 해줬지?"

    "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나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하늘색 눈동자에는 확실한 열기가 담겨 있다.



    "엘세."



     그리고 17년 만에 불러주는 그 이름에,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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