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1부 사랑스러운 옛 모습을 쫓아서 1
    2023년 09월 20일 23시 10분 1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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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맛없었나......? 펠릭스는 좋은 것만 마셔왔을 테니, 아마추어가 만든 커피는 이제 입맛에 맞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당황해서 펠릭스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해요, 버리셔도 괜찮아요."

    "...... 왜 그런 짓을?"

    "입에 안 맞으셨나 싶어서요."

    "아니요, 오히려 맛있어서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시도해도 이 맛은 안 났거든요."



     그제서야 마침내, 펠릭스는 내가 끓인 차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그리운 맛과 똑같은 맛에 놀랐던 모양이다.



    (그렇게 좋아했다면 분량을 제대로 알려줄 것을 그랬어)



     차 한 잔으로 정체를 들키지는 않을 테니,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거 다행이네요.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분량과 만드는 방법을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자 펠릭스는 왠지 모르게 안심하는 듯 작게 웃었다. 재회한 후 처음 보는 그의 진짜 미소인 것 같았다.



    "......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군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펠릭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펠릭스는 찻잔을 조용히 접시에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 나라의 '저주'에 대해서는 배우셨습니까?"

    "네. 루피노가 친절하게 가르쳐 줬어요."



     루피노의 가르침은 매우 알기 쉬웠고, 덕분에 부끄러워할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대답하자, 펠릭스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나요?"

    "? 네. 어랬어요."

    "............"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에,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 루피노 님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허락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조금 놀랐습니다."

    "네?"

     

     그렇다면 나는 왜 허락받은 것일까. 역시 내가 일단은 '성녀'이기 때문일까.



    "제국의 저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더 이상 참혹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돼요. 반드시 모든 저주를 풀어 보이겠어요."



    (더 이상 누구도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말에 펠릭스는 눈을 부릅떴다. 그 반응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저, 저기, 제가 푼다거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뭔가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다른 힘도 없는데, 대놓고 거창한 말을 해버렸잖아. 부끄러워......!)



     부끄러워서 양손으로 볼을 가리고 있자, 펠릭스가 아주 살짝 웃는 것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여전히 얼굴에 열기를 느끼며, 나는 이 흐름을 타서 부탁을 하기로 했다.



    "루피노와 함께 붉은 동굴에 가도 될까요? 저주를 직접 눈으로 보고, 조사해보고 싶어서요."

    "............"



     입을 다물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펠릭스는, 네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꼭 가겠다는 마음으로 펠릭스를 계속 쳐다보자,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단, 주변에서 당신이 성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외모를 바꾸어 주세요."



     성녀가 저주받은 땅으로 갔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곤란하기 때문일 것이다.



    "꼭 그럴게요."

    "그리고,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 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이번에는 내가 눈을 깜빡였다. 분명 펠릭스는 바쁠 텐데, 도대체 왜?



    "일정은 제가 정해도 될까요?"

    "아, 네."



     펠릭스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으니, 마침 시찰을 가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무사히 갈 수 있다는 것, 게다가 펠릭스와 루피노가 함께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낮에 했던 이야기의 계속입니다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자, 펠릭스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이런으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하면서도, 수고를 덜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펠릭스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당신 외에는 다른 사람을 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후계자는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 중에서 선택할 겁니다."

    "...... 어째서죠?"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는 것일까. 하지만 진지한 눈빛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펠릭스는 한숨을 내쉬며, 분명하게 말했다.



    "저는 평생 그녀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역시 펠릭스에게는 마음을 정한 상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 표정과 목소리에서, 그 여자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그분을 저 대신에........"

    "......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자조 섞인 미소를 짓던 펠릭스는 눈을 깔았다.



    (세상에...... 모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잃어버렸다니......)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스승을 눈앞에서 잃고, 피땀 흘려 노력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만난 사랑하는 여인마저 잃다니, 신은 얼마나 펠릭스에게 시련을 주는 것일까.



     울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그 와중에도 펠릭스는 기도하듯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결국 손을 떼는 순간, 셔츠 사이로 보이는 그 새빨간 보석에 다시 한번 숨이 멎었다.



    (저 목걸이, 왠지 낯익은 것 같기도 해)



     모양이 일그러져 있긴 하지만, 내(엘세)가 마지막까지 착용하고 있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펠릭스는 "아"라고 중얼거렸다.



    "이 목걸이도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것입니다."

    "...... 앗."



     그렇다면 내 착각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죽은 연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분이셨나요?"



     펠릭스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차분하고 애틋한 눈빛으로 목걸이를 바라본다.



    "그녀는 저의 스승이었으며ㅡㅡ우리나라의 대성녀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멍하니 펠릭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거, 전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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