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2 접촉(2)2022년 10월 18일 20시 10분 5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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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리니안, 라이사, 그리고 매스커레이드 스웜은 구경을 넘어 동부상업연합에 들어섰다. 평소처럼 난민에 섞여 나아가다가, 그대로 몰래 난민의 대열을 이탈해 수도 하르하로 나아갔다.
"멈춰라! 여기서부터는 수도 하르하다!"
생각대로 경비병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이걸 봐."
"이, 이건 연합회의 의장님께서 발행하신 통행허가증!"내가 통행증을 내밀어 보이자, 경비병이 놀란다.
"지나가도 되지?"
"예, 물론입니다. 부디 지나가십시오. 멈춰 세워서 죄송했습니다."
순식간에 태도가 바뀐 하르하 성문의 경비병들. 딱하게도. 오늘도 서프라이즈란다.
"매스커. 그 호텔까지 가라. 지도는 이거다."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원래는 지도를 건네지 않아도 집합의식으로 전할 수 있지만, 순수한 인간 시절의 감성이 남은 탓인지 이런 때는 현실세계에서 주고 만다. 이후에는 좀 더 집합의식을 활용하자.
하지만 이미 집합의식은 대활약을 해주고 있다.
내가 이렇게 동부상업연합에서 리얼타임으로 슈트라우트 공국에서의 상황을 볼 수 있는 것도, 그에 지시할 수 있는 것도 집합의식 덕분이다. 이 정보전달속도는 다른 국가한테 없을 것이다.
현재 슈트라우트 공국 방면의 전선은 로랑이 재주껏 산길목에서 닐나르 제국군을 막아내고 있다. 절벽을 폭파하고 잠복을 하고 산길을 붕괴시키는 등 여러 수단을 쓰며 닐나르 제국군의 전진을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슈트라우트 공국 쪽에 투입하고 있는 닐나르 제국군의 병사 수가 적은 것이다. 아무리 봐도 네다섯 개 사단 정도를 투입하고 있을 뿐이며, 마르크 왕국을 정복했을 때와 같은 규모가 아니다.
가능성으로는 병력을 숨겨놓았을 가능성, 엘프의 숲을 지나는 침공을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 주전력을 프란츠 교황국
쪽으로 이동시켰을 가능성. 이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맥시밀리언은 방심할 수 없는 남자다. 내가 생각한 이상의 짓을 해올지도 모른다. 빨리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계속 수세에 몰린다.
"저 호텔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호텔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 들어가자. 이제부터가 승부다."
재주껏 동부상업연합을 아라크네아 측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내 수완을 시험할 때가 오고 있다.
내가 지정된 로열 스위트룸의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이미 3명의 남녀가 앉아있었다. 한 명은 아는 얼굴ㅡㅡ벤투라다. 다른 둘은 살인청부업자 아니면 연합회의의 의원이겠지.
"안녕하신가. 나는 아라크네아의 여왕 그레빌레아. 이쪽은 내 기사인 세리니안과 호위인 라이사, 매스커다."
나는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다소곳한 미소로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어이. 저게 그 괴물들의 두목이라는 거냐, 케랄트? 여왕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그냥 인간이잖아. 그리고 그 호위도."
"저는 14세가량의 인간 소녀라고 보고했을 텐데요, 콘라드. 저희 보고에 잘못은 없어요. 그녀가 아라크네아를 통솔하는 여왕 맞아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집에 돌아가서 잠이나 자지 그래요?"
내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콘라드라는 남자와 케랄트라는 여성이 대화를 시작했다. 보통 자기소개를 끝내면 자기들도 자기소개를 하는 게 예절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그들을 알고 있기는 하다. 콘라드는 용병단의 단장, 케랄트는 대륙모험가동맹의 길드장이다.
"둘 다 여기선 자기소개를 하는 게 예절이라 보는데."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벤투라가 둘에게 말했다.
"먼저 연합의회의원 두 명을 소개하지. 콘라드와 케랄트다."
벤투라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 이거 실례. 나는 콘라드 크레브라스. 용병단 [외눈의 늑대]의 단장이다. 잘 부탁한다고, 아라크네의 여왕 씨?"
마지막이 의문형인 게 신경 쓰인다. 아직도 못 믿는 건가.
"저는 케랄트 루아노. 대륙모험가동맹의 길드장을 맡고 있습니다. 당신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해 인간과 다름없는 지성을 가졌다고 파악해 놓았거든요. 잘 부탁드립니다."
케랄트라는 여성은 왠지 파악이 안 된다. 수상한 느낌이 든다.
"정말 우리와 동맹을 맺고 싶다며?"
"그렇다. 우리들한테는 공통된 적이 있다. 닐나르 제국이지. 제군들은 닐나르 제국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가?"
케랄트가 묻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저희들은 제국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닐나르 제국 녀석들은 국가를 확장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쪽으로서는 정말 민폐가 따로 없지요. 거기다 대륙의 적이라 칭하는 적을 상대로 전쟁하고 있을 때 등 뒤를 찌를 줄은."
콘라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며 그렇게 고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괴물과 한편이 되는 건 좀 그런데."
"우리들은 야수 같은 괴물이 아니다. 지성 있는 집단이다. 그쪽이 동맹을 승낙한다는 우리들은 신사숙녀처럼 제군들을 대할 것이다."콘라드의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와 동맹한다면 닐나르 제국에 대한 압박이 된다. 우리가 동맹국에 원하는 건 군대의 통행허가뿐. 닐나르 제국같은 군사적 점령은 바라지 않아. 그 점을 잘 생각해줬으면 한다."
"확실히 닐나르 제국 녀석들 이 전쟁을 틈타 몇몇 나라를 점령해버리긴 했지.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거라 보고 있어. 대국의 오만함이라는 거다. 녀석들은 남부의 나라들을 흡수했을 때부터 오만했으니까."
오오. 내 말에 콘라드가 동의한다. 조금만 더.
"저희로서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아요. 그쪽은 인간이 아닌 종족. 엘프처럼 태고적부터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최근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여러 나라를 삼켜온 존재. 그쪽이 야수 정도의 이성을 지녔다면 걱정할 일은 없었겠지만, 인간 정도로 머리가 좋다면 경계해야 하잖아요."
여기서 훼방을 놓는 것은 케랄트다. 그녀는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와 세리니안 일행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사실을 숨기고 계시구요. 저 세리니안이라는 여성과 라이사라는 소녀는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본성을 숨기고 있다니 억울하군. 인간과 대하기 쉬운 방법으로 바꿔놓았을뿐이다. 세리니안, 라이사, 의태를 풀어."
케랄트가 고하자, 나는 세리니안들에게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둘은 내 지시에 스웜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냈다. 세리니안은 스웜의 하반신과 벌레의 날개가 생겨났고, 라이사의 등에서는 벌레의 다리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일에 벤투라와 콘라드가 망연자실해 있다.
"그게 본성인가요."
"사람과 대하기 어려운 모습니다. 본성과는 달라."케랄트. 이 녀석 싫다.
"서, 설마 그런 괴물이 된다니......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괴물이 아닌, 지성 있는 생명체다. 모습이 성격을 드러낸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해. 너희가 싫어하는 황제 맥시밀리언도 모습은 인간이지만, 하는 짓은 우리와 다름없을 거다."
콘라드가 주저하자, 내가 그렇게 해명했다.
"그건 확실히 그렇군요. 맥시밀리언 녀석, 그놈이야말로 괴물입니다. 제국을 계속 거대화시키며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죄다 손에 넣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하는 짓이 바로 그렇지요."
콘라드는 맞장구를 쳤다. 이쪽의 말에 찬성의 기색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마르크 왕국, 슈트라우트 왕국, 그리고 프란츠 교황국을 멸망시킨 당신들한테도 할 수 있는 말인데요. 당신들의 전쟁의 빈도는 닐나르 제국에 필적하잖아요."
"우리 전쟁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게 아냐. 그 점은 참작해줬으면 한다."
"닐나르 제국도 전쟁을 시작할 때는 이유를 댔었는데요? 이번 프란츠 교황국의 공격도 대륙을 지키기 위해, 남부 연방을 침공했을 때는 큰 국가가 되어 외부에서의 간섭을 차단한다는 명목이었거든요."
케랄트라는 여성은 정말 다루기 어렵구나.
"그럼 묻겠는데 닐나르 제국과 아라크네아 사이에 끼인 이 나라는 어떤 방침을 취해야 한다고 케랄트 여사는 생각하는지? 니나르 제국은 언젠가 이 나라에도 손을 뻗을 거다. 아라크네아도 교섭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실력행사로 나올 테고."
난 태도가 명확하지 않은 케랄트에게 그렇게 추궁했다.
"전 아라크네아와의 동맹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닐나르 제국과의 동맹도 부정하지 않구요.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라도 씁니다. 그렇게 동부상업연합은 살아남아왔어요."
"그건 단순한 낙관론이다. 국가로서의 신용을 잃는 행위다. 어제까지 적대시하던 나라한테 도움을 요청해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케랄트의 의견은 모험가라면 좋은 거겠지만, 국가로서는 취해야 할 입장이 아니다. 국가는 일관된 외교를 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는 것이다.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저희와의 동맹을 원하는 상태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아라크네아도 닐나르 제국도 서로 견제하면서 서로가 우리나라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으니, 이건 교섭의 재료가 될 테지요."
성가신 짓을......
"그럼 안 되지. 여차하면 닐나르 제국에, 여차하면 아라크네아에. 그런 외교를 하다가는 양국에서 버림받는다고."
하지만, 콘라드가 케랄트의 의견을 부정했다.
과연. 그런 견해도 있구나. 팔방미인은 미움받는다는 말이 바로 이걸 말한다. 나라의 인상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이득 보는 외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선택지는 셋이다. 하나, 우리나라는 어떻게든 스스로 지켜낸다. 둘, 닐나르 제국에 굴복해서 녀석들한테 주둔을 허용하고, 보호받는 대신 싹 다 줘버린다. 셋, 아라크네아와 동맹해서 정말 인류는 괴물과 공존할 수 있는지 시험해본다. 이상."
코나드는 그렇게 말하며 세 가지의 선택지를 들었다.
"케랄트. 넌 어떤 걸 고를 테냐?"
".....어려워. 닐나르 제국과의 동맹은 논외다. 그렇다 해도 우리한테는 자주국방을 할 정도의 전력은 없어. 하물며 대륙을 지배하는 두 세력을 상대로는 더욱더. 하지만 아라크네아를 정말로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야."
역시 신뢰받기는 어려운가.
"난 아라크네한테 걸어보려고. 닐나르 제국은 관료들이 일방적으로 주둔권을 요구해왔을뿐이지, 맥시밀리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거든. 그런 점에서 여왕이 이렇게 직접 행차하신 아라크네아는 믿어볼 만 해."
오. 내가 직접 온 것이 의외로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 신뢰란 발로 뛰어서 얻는 거니까. 하나 배웠다.
"저도 아라크네아가 여왕이 직접 왔으니 믿고 싶어 지긴 해요. 하지만 인간은 엘프를 박해하고 드워프를 코웃음 치며 아인종을 업신여겨 왔지요. 그런 상황에서 괴물의 군세가 나타나 동맹국이 되어달라고 해도, 국민들이 과연 납득할까요?"
그런가. 이 세계에서는 엘프들이 박해받는 것처럼 다른 종족한테도 그랬구나. 내가 있었던 지구도 인종차별이 있었지만. 역시 아[인]조차 안 되는 스웜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어려운가.'
"다른 길이 없다면 벌레하고도 동맹을 맺어야지. 우리들은 드워프를 연합의장으로 추대하고, 엘프와 거래하고, 마수도 사육해왔다고. 이제 와서 벌레랑 어쩐다 해서 문제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데."
"전 그렇게 낙관적으로 될 수 없겠는데요."
의논은 아무래도 평행선이다.
어쩔 수 없지. 마지막 수단이다.
"동맹할 때, 인질이 되어도 상관없다만."
"뭣......!"
내가 넌지시 고하자, 콘라드는 눈을 휘둥그레 하였고 케랄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신용을 위한 담보다. 우리는 결코 너희를 배신하지 않아. 동맹자로서 함께 싸워나가자. 그를 위한 신용이 필요하다면, 내가 인질이 되어도 상관없다."
나는 다행히 인질이 되어도 스웜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인질이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 안 됩니다, 여왕 폐하! 닐나르 제국에 넘겨버리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때는 구해주러 오면 돼, 세리니안."
뭐, 확실히 닐나르 제국에 팔아넘기지 않을 거라는 보증은 없다. 상대인 동부상업연합을 믿어볼 수밖에.
"하하하핫!"
여기서 갑자기 콘라드가 웃어제꼈다.
"그 마르크 왕국, 슈트라우트 공국, 프란츠 교황국을 멸망시킨 괴물의 여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구만! 하지만, 마음에 들었어. 당신과는 잘해나갈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적어도 맥시밀리언 보다는."
"칭찬 고마울 따름이다."
바보 취급당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도 바보 같은 말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걸로 이쪽의 각오를 보여줬다.
어떻게 움직일 테냐, 케랄트?"
"저도 당신을 믿어도 좋을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은 인간에 가깝네요. 그런 인간미가 있다면, 저희와 아라크네아의 이해와 협력도 가능하겠죠. 그 결과 동맹을 맺는 일도 불가능하진 않을 거예요."
오오. 케랄트한테도 나의 얼빠진 발언은 효과를 거둔 모양이다. 나한테는 악녀의 재능이 있어 보여.
"그럼, 두 사람은 동맹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인가?"
"그래. 내 파벌은 그거면 돼."
"제 파벌도 설득해볼게요."이걸로 동부상업연합의 일부 의원을 설득할 수 있었다.
"벤투라. 당신은?"
나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의장 벤투라에게 말을 걸었다.
"전 아직 보류입니다. 이틀 뒤, 유력 의원인 호나산 알프테르를 소개해드리죠. 그가 동맹에 찬성한다면 동맹은 결정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거 고마운 일이군."
동맹 체결 뒤 단번에 동부상업연합을 가로질러 닐나르 제국 본토에 침공한다.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내주겠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서로에게 유익한 대화가 되어 다행이군요."
벤투라는 그렇게 말하고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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