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장 14 건반악기 <클라비코르디오>2022년 07월 16일 09시 40분 5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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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자의 관심을 필한테서 돌려야만 해.
운 좋게도, 왕태자는 눈앞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다.
그 시선 끝은 방구석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내 몸과 비슷한 크기의 사각형 물체가 놓여 있었다.
"악기네요."
그렇게 내가 중얼거리자, 왕태자는 "음?" 하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라......
확실히 이상하다.
왕태자의 시선 끝에 있는, 방구석에 놓여진 것.
저것은 악기다.
하지만...... 어째서 저것이 악기라는 걸 알았는지, 나는 내 일인데도 이상했다.
왜냐면, 저것은 붉은 천으로 덮여있어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난 어째서 저것이 악기라는 걸 알아챘을까?
왕태자도 의아했던 모양이지만, 이윽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클레어는 천을 들추고 안을 본 거로군."
하지만 나는 이 방에 들어선 뒤로, 구석에 놓인 물체는 만지지 않았다.
어째서 난 저 물체가 악기였다는 걸 알아쓸까.
....... 대답은 하나다.
분명 지난 인생에서 봤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 어디서?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생각나지 않아......
열심히 떠올려야 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왕태자는 방구석으로 가서 악기에 덮인 붉은 천을 걷어냈다.
그것은 나무로 된, 갈색의 사각형 상자 같은 것이었다.
네 다리가 달려있는 그 상자는, 바닥에서 떠 있다. 뚜껑 같은 것이 위쪽에 있는데, 그것을 열고 닫을 수 있다.
그리고 상자의 앞쪽에는 검고 하얀 판자 같은 것이 많이 나열되어 있다.
필과 시아도 신기하다는 듯 그 악기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 처음 봤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봤던 적이 있다.
분명......
"이것은 건반악기라는 것이지. 이 건반을 누르면......"
왕태자는 '건반' 이라 부르는 검과 흰 판자를 눌렀다.
그러자, 공기가 떨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놀라는 우리를 본 왕태자는 유쾌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좀 대단하지?"
왕태자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천진난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생각해보면, 왕태자도 아직 12살 소년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는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였고, 갑자기 날 구금한 탓에 무섭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의 왕태자의 표정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 그래.
이런 왕태자를 본 적이 있어.
전의 인생에서, 왕가의 별장 같은 지방의 궁전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 왕태자가 같은 것을 보여줬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악기를 알고 있으며, 천으로 덮여있어도 뭔지 알았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구금당하지 않고, 화기애애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지난번 인생에서도, 열두 살 무려의 우리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관계가 나빠진 것은, 시아가 나타난 다음이지만.
하지만 그 이전에도 뭔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때, 왕태자는 마찬가지로 이 악기를 득의양양하게 소개해주려 했었다.
하지만 그 건반악기는 부서져 있었다.
왕태자는 그 일을 정말 슬퍼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과하게.
나는 그때 뭐라 말했더라?
맞아. "알폰소 님이라면, 이런 악기 하나 정도야 부서져도 괜찮아요. 왜냐면 알폰소 님은 언젠가 국왕이 되실 분이니까요." 라며 달랬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발언은 무신경했던 걸지도 모른다.
왕태자는 소중히 건반악기의 판을 쓰다듬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소중한 것이겠지.
그때는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했었지만, 사실 왕태자한테는 다른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악기는 부서지지 않았다. 다른 궁전이 아닌 왕도의 왕궁으로 옮겨왔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지난 인생과는 달라졌다.
뭔가가 걸린다.
혹시, 여기에 파멸을 회피하기 위한 열쇠가 있을지도......
그때, 필이 내게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 누나, 그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면 좋은 소리가 날까?"
"글쎄. 나도 들어본 일이 없어서......"
전의 인생에서는 이미 부서져 있었고, 지금도 왕태자가 건반을 한번 쳐서 소리를 냈을 뿐이니.
이 악기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시아도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나와 필한테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이 악기가 파멸과 관계있는지는 별개로 치고.
악기의 연주를 듣고 싶은 기분도 든다.
그렇다면 부탁할 상대는 한 명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선 이 건반악기라는 것을 연주할 수 있으세요?"
"아아, 그래. 뭐니 뭐니 해도, 나는......"
거기서, 왕태자는 말을 흐렸다.
뭔가 말하기 힘든 일이라도 있으려나.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왕태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건반악기의 음악을 듣고 싶어요. 저기...... 전하께서...... 연주해 주실 수 있으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왕태자의 푸른 눈동자가 번쩍이더니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물론 좋아. 해보지."
왕태자는 의자를 들고 와서 건반악기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건반에 어린애다운 작은 손을 얹었다.
이 사소한 호기심이...... 나와 왕태자의 운명을 바꿨음을, 난 곧장 깨달았다.
왕태자의 연주는...... 조심스레 말해도 훌륭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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