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side. 아나스타샤
    2022년 06월 23일 13시 03분 3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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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kakuyomu.jp/works/16816452218841045726/episodes/16816452218859851495

     

     

     

     아렌이 기숙사에서 모습을 감춘 사실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나는, 이미 깊은 밤인데도 서둘러 마차를 타고 왕도의 저택으로 향했다. 아버님[각주:1]을 만나서 어떻게든 아렌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런 작별이라니 인정할 수 없어.

     

     그리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다.

     

     그렇게 저택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버님! 아버님! 아나스타샤입니다. 부디! 부디 제 말 좀!"

     

     예의도 뭣도 없었다. 이런 행동은 공작영애로서 실격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초조했던 것이다.

     

     이대로 아렌이 사라지고 말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제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나,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냐? 돌아오는 건 내일이 아니었더냐?"
     "그게 말이에요!"

     

     나는 횡설수설하면서도 어떻게든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결투를 억지로 신청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버님이 입을 열었다.

     

     "그랬군. 전부터 이야기는 듣고 있어서 정말 어리석은 자였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제 그 정도라니. 이렇게 되면 약혼의 유지는 어렵겠군."

     

     아버님은 역시 나라의 일을 걱정했지만, 그런 일보다도 지금은 아렌이다.

     

     "그런 것보다도! 동급생이 저의 대리인으로서 싸웠는데, 왕태자 전하, 클로드 왕자, 마르크스, 오스카, 레오나르도의 5명이! 그래서, 그! 그 모두를 쓰러트리고 이겨서! 아, 부디, 부디 그의 목숨을 살려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아버님이 놀람의 목소리를 낸다.

     

     "뭐라고! 그 5명한테 혼자서 이겼다고!?"

     "예. 그는 우리나라에서 잃으면 안 될 천재예요. 부디! 부디! 제게 가능한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그러니 부디!"

     "아나, 진정하거라."
     "아......"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나를 달래서 진정시키자 세바스가 차를 가져와 주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얼 그레이다.

     

     "이렇게나 흐트러지다니 아나답지 않아. 대체 누가 그 5명한테 이겼다는 거냐? 그 학년에서는 최강인 5명이 아닌가. 상급생이라 해도 그럴만한 남자는 없었을 텐데?"
     "그게, 특기생인 아렌이라는 남학생입니다."
     "아렌? 과연. 그런 건가. 분명 평민의 모험가였다지?"

     "예."
     "그렇군. 세바스, 그 아렌이라는 아이는 어떤 남자인가?"

     "예. 아렌은 이곳 왕도 출신의 모자가정에서 자란 소년으로......"

     

     역시 조사했던 모양이다. 세바스가 내가 모르는 아렌의 비밀을 소상히 밝혀나간다. 왠지 비밀을 듣는 기분이라서 정말 싫어진다.

     

     "그렇군. 사상 최연소 C랭크 모험가이며 미궁답파자에 고블린과 오크의 슬레이어라. 대단하군. 거기다 공부에서도 톱클래스일 뿐만 아니라 학교 제도가 시작된 이래의 천재인가."

     "그렇습니다! 거기다 성실하고 호감가는 성격이고, 아, 아렌은 실력을 숨긴 모양인지, 전하께서 폭주시킨 마법을 풍마법으로 지워버릴 정도의 마법의 사용자입니다."

     

     나는 아렌의 좋은 점은 아버님한테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정말이지. 이래서는 아나도 전하를 비웃을 수 없지 않은가."
     "예? 무슨 의미십니까?"

     

     나는 아버님의 말씀하신 의미를 몰라 되물었지만, 아버님은 애매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의 일을 자세히 묻고는, 내게 자기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내일 아침에 세바스가 그의 자택을 찾아간다고 한다.

     

     분명 세바스가 아렌을 찾아내 줄 거야. 그렇게 기도하면서 나는 잠에 드는 것이었다.

     

    ****

     

     그리고 이튿날, 아렌이 세바스를 데리고 저택으로 왔다. 내가 있으면 냉정하게 대화할 수 없다고 들어서, 감시용 방에서 어머님과 오라버님과 함께 그의 모습을 감시하기로 했다.

     

     나는 아렌의 무사한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무난한 이야기부터 아렌과 아버님의 회담이 시작됐다.

     

     그건 그렇고 아렌은 대단하다. 보통은 아버님의 박력에 움츠려서 아부하는 말이라도 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아버님이 나의 대리인으로서 싸워준 일에 감사를 말할 때조차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저거라면 분명 아버님도 꽤나 마음에 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님은 핵심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그때 아렌의 입에서 나온 대사는 충격적이라고만 표현할 길이 없는 내용이었다.

     

     먼저, 어제의 작별 인사는 역시 퇴학을 각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거, 인정 못 해. 인정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한결같이 노력하는 모습을 사람으로서 존경한다고 들었을 때는 무심코 미소 짓고 말았다.

     

     그리고 나와는 신분이 다르다는 그 대사는 정말 아렌답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영문모를 아쉬운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다.

     

     아렌은 내가 져서 학교에서 추방될 경우에 왕위계승권 투쟁이 발생하고, 그 혼란을 틈타 동쪽의 에스트 제국이 침공해올 가능성을 지적해 보인 것이다.

     

     세상에! 나는 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가!

     

     아렌의 심모원려함에 감탄함과 동시에, 자신의 좁은 시야가 부끄러워졌다.

     

     본래 나는 전하께 무슨 말을 들어도 장갑을 던져서는 안 되었다. 그 결과 아렌한테 뒤처리를 맡기고 말아서, 이 천재의 미래를 망쳐버린 것이다.

     

     귀족으로서 운운하며 대단한 듯한 말을 해왔지만, 귀족으로서의 자세가 안 되었던 것은 바로 나였다.

     

     전하를 비웃을 수 없겠다는, 어젯밤 아버님께 들은 그 말이 내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깊은 후회에 젖은 내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와서, 드레스의 스커트에 자국을 만들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람즐렛 가문이 아렌의 후원자가 되겠다는 것을 약속하고서 회담은 끝났다.

     

     어머님이 아렌을 만날 거냐고 물어보셨지만, 이렇게나 퉁퉁 부은 눈으로 만날 수는 없다.

     

     고개를 작게 젓는 나를, 어머님이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1.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이 소설 한정으로 쓰는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아버지나 편지상의 호칭으로만 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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