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84 마리 누나와 여제
    2022년 06월 09일 09시 05분 5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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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5539fz/85/

     

     

     

     왕과 함께 향한 곳은, '메멘토모리' 에서 조금 떨어진 산등성이에 뻥 뚫린 큰 구멍이었다.

     

     "이곳은 계약의 동굴이라 하는데, 이 안에서는 레기오스와 카르디아가 상대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되어있다."

     

     "그것도 태고의 기술에 의한 건가요?"

     

     "아마도. 이 동굴은 '메멘토모리'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다."

    동굴 안에서는 레기오스와 카르디아의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두 대열의 사이를, 먼저 도착한 모양인 여제를 포함한 세 명이 나아가서는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가장 뒤에서 걷는 자는 그 상복 같은 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그 얼굴이 한순간 이쪽으로 향한다.

     

     흔들리는 베일 틈새로 새빨간 입술이 엿보였는데, 싱긋 웃는 것처럼 보였다.

     

     "윽!"

     

     그걸 본 순간, 난 등줄기가 얼어붙어서 무심코 옆에 있던 그의 옷소매를 붙잡고 말았다.

     

     그가 날 걱정하는 것처럼 시선을 보내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나는 저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경계와는 다르다.

     

     아마 이것은, 공포.

     

     그것도 어딘가에서 느껴본 일이 있는......

     

     여자의 모습이 동굴 안으로 사라지자, 왕도 뒤이어 걸어간다.

     

     왕의 뒤를 쫓아가면서, 나는 어느 물건을 몰래 그에게 건넸다.

     

     "이것은......"

     

     "네가 갖고 있어줬으면 해. 나는 다룰 수 없지만, 너라면 혹시 몰라서."

     

     적어도 나보다는 그가 다룰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무엇보다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부적 같은 느낌?

     

     아니, 나는 단지 일시적인 위안을 원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나.

     

     아무 일도 없으면 그게 제일이니까.....

     

     

     

     동굴의 안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바위를 파내어 만든 듯한 인공적인 느낌의 장소였다.

     

     투박한 바위 표면이 노출되어 있고 습한 지면이 펼쳐진 것이 아닌, 그냥 매끈하게 닦아놓은 돌의 동굴.

     

     그 표면에는 이음새도 전혀 없어서, 터널과도 다른 마치 근미래의 구조물로 보인다.

     

     안에는 조명 같은 것이 전혀 없었지만, 아무래도 돌 자체에서 은은하게 녹색 빛이 나오는 모양이라서 나아갈 때 곤란하지는 않았다.

     

     다만 갈림길이 여럿 존재하고 이정표가 될 물건이 없기 때문에 헤매기 쉬워 보인다.

     

     "그건 그렇고 임금님, 어떻게 헤매지 않고 나아가는 건가요?"

     

     "이것은 왕과 왕에 준하는 자가 배우는 지식 중 하나다. 그리고 나라 간의 결정사항은 기본적으로 이런 장소의 안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몬스터가 나오지 않지만, 한번 헤매면 좀처럼 바깥으로 나올 수 없으니 조심해라."

     왕의 충고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수십 분.

     

     몇 번인지 모를 분기를 나아가자, 이윽고 여태까지와는 다른 창백한 빛이 보였다.

     

     그것은 가까이 올 정도로 밝아졌고, 눈부심을 느낄 무렵에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우와......"

     

     그 불가사의한 광경에, 나는 여태까지 품었던 긴장감을 잠시 잊고는 감탄의 목소리를 냈다.

     

     공간의 중앙, 그곳에는 푸르고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위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석회암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여기사 계약의 동굴의 최심부. 채워진 물의 모양을 본떠 '라크스 라크리마', '눈물의 호수' 라고 일컬어지고 있지."

     

     "예쁜 장소네요."

     

     수면을 바라보니, 돌이 내는 빛이 투명도가 높은 물속에서 무수히 반사되어 호수 전체를 파랗게 빛내고 있다.

     

     석회암 테이블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나아가자, 지면에 꽂아 넣은 검의 손잡이 끝에 양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안 하는 여제의 모습이 있었다.

     

     왕과 함께 나아가서 서로의 거리가 2m 정도가 되었을 때, 그 눈이 번쩍 뜨였다.

     

     가까이에서 대면한 여제는, 단순히 미녀라고 표현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단정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미녀 앞에 절세라던가 경국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스 블루의 긴 머리카락은 뒤에서 묶여있었으며, 키는 170cm를 넘을지도?

     

     허리는 놀라울 정도로 가는데도 가슴의 저 풍만함은......

     

     무심코 자기 것과 비교하고 말아서, 나는 내심 큰 대미지를 입었다.

     

     "자, 슬슬 진짜 목적을 들어보도록 하지 않겠나, 빌헤르미나 폰 레기오스."

     여제의 외모에 전혀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왕이 물어보았다.

     

     "본제는 영웅이라 불리는 자를 만나, 대화하고 싶다고 전했을 터다. 아레이스 로아 카르디아."

     "장난은 그만둬. 철저한 합리주의자인 그대가 모험가 한 명을 만나려고 이 정도까지 일을 크게 벌일 리가 있을까."

     "본제는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 본제의 목적에 거짓은 없고, 거기다 이제 목적은 달성되었다."

     "뭐라고?"

     

     흘끗 내게로 향한 여제의 시선.

     

     그 시선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서늘해서, 사람한테 향해도 될만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본제의 강함과 비교할 가치도 없는 약자. 기대 밖이다."

     

     "호오, 짐의 나라의 영웅을 약자라고? 기대 밖이라고? 정말 재밌는 말이로군, 빌메흐미나 폰 레기오스!"

     

     "본제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본제한테 재미 따윈 없다. 아레이스 로아 카르디아."

     

     일촉즉발의 두 사람과, 새우등 터지는 나.

     

     곤란해하던 나는,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두 사람은 어디로 갔나요? 동굴에 들어왔을 때는 세 사람이었잖아요."

     

     내 말에 왕도 흥미를 가졌는지, 여제로 향하던 기세를 조금 약화시켰다.

     

     "본제는 모른다."

     ............응?

     

     "하지만 이 동굴에 함께 들어갔잖아요. 모른다는 말은......"

     

     "본제의 뒤를 걸어온 것은 자유. 동생과 동생의 약혼녀라면 그걸 막을 도리가 없지."

     

     아니 아니, 그런데도 도중에 모습을 감춘다니 너무 수상하잖아요.

     

     "그대 혹시......"

     

     왕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분노도 잊고 어이없다는 눈길로 여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왕이 깨달은 무언가는, 곧장 현실이 되었다.

     

     처음에 나타난 것은, 아니 들린 것은 무수한 발걸음.

     

     그것은 입구 쪽에서 들려왔고, 이윽고 실체가 되어 제국병의 모습이 되었다.

     

     선두를 걷는 자는, 내가 망루에서 멀찍이 보았던 남자였으며, 여제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의 동생.

     

     그리고 그가 이끄는 병사와는 다른 집단이 뒤를 따르고 있다.

     

     그 정체는, 제국의 모험가.

     

     그곳에는 가능하면 이제 만나고 싶지 않았던 레온 일행의 모습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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